무등일보

<칼럼> 전두환 덕분에

입력 2020.11.26. 17:42 수정 2020.11.26. 19:12 댓글 0개
주현정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1본부

"덕분입니다." 전두환을 대면하게 된다면 꼭 하고 싶은 한마디다.

대한민국 현대 민주사 자체를 부정하고 폄훼하는 이에게 은혜나 도움을 받을 때 건네던 화답을 하다니 가당치도 않다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넌센스 같은 상황이지만 그에게 마음을 전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79년 총과 군화발로 일으킨 쿠테타, 이듬해 5월 항쟁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목숨들. 전두환이 권력 장악의 도구로 삼았던 그해 5월 민중들의 외침은 훗날 대한민국에 진전된 민주화의 원동력이 됐다.

2017년 4월 전두환이 내놓은 회고록도 마찬가지다. 진실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그간 부단히도 애썼던 역사 왜곡 '끝판왕'의 결과물인 그의 회고록은 도리어 뒤늦게나마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37년 만에 다시 펜으로나마 일으켜 보려했던 역사 쿠데타의 계획은 그 날의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가는 수많은 증거와 증인을 수면 위로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를 광주법정 피고인석에 세우기까지 했다.

전두환은 진실이 두려웠다.

실제로 전두환은 1985년 황석영 작가와 이재의, 전용호씨 등이 죽음을 각오하고 세상에 내놓은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32년 만에 개정판을 내놓자 이를 왜곡하기 위해 회고록을 준비했다. 실제로 두 책의 목차는 같다.

이를 두고 전두환 회고록 관련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김정호 변호사는 '악의 성실함'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선후배 법조인들과 함께 이 재판에 뛰어든 이유도 악의 성실함을 뛰어 넘는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객관적 자료의 입증을 통해 판결로, 기록으로 남겨야한다는 생각에서다.

전두환이 회고록을 출간한 최초의 의도는 매우 사악했으나 결과론적으로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다.

지금 광주에서는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를 시작으로 전두환의 엄벌을 촉구하는 각계각층의 릴레이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고인이 된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전두환을 엄중히 처벌해 달라는 목소리가 아니다. 광주와 전남의 역사를,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고 있는 이에 대한 엄벌을 내려달라는 당부다.

갈팡질팡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혹'. 지난 세월 수많은 역경과 폄훼 속에서도 오직 진실을 향한 한 길만 걸어왔던 5·18민주화운동이 의미있는 40주년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넘어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라는 명제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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