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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린이'의 어설픈 외출
입력 2020.11.13. 10:51 수정 2020.11.15. 20:00 댓글 0개'주린이'란 '주식'과 '어린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주식초보자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동학개미운동'은 '개미'를 개인 투자자에 비유한 말로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해외 주식투자자들이 팔아치우는 주식을 개인 투자자들이 그대로 사들이기 위해 몰리고 있다는 뜻을 담은 새로 만든 표현이다. 고객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맡겨놓은 고객예탁금이 지난해 평균 25조여원에서 올 해는 50조여원으로 늘었다는 통계가 주식 인구의 급증을 말해 주고 있다.
금융 당국에 의하면 부동산 규제가 심해지면서 부동자금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 왔을 뿐 아니라 그동안 경륜, 경마장 등으로 향하던 일부 도박 자금들도 코로나로 인해 가는 길이 막히자 주식 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진단이다. 물론 정상적인 투자를 위해 주식 시장으로 자금이 몰려든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누구나 주식을 소유하는 순간 해당 기업의 주주 권리를 획득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기업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최근 주식 인구의 급증 현상이 정상 궤도를 이탈하거나 크게 흔들리는 등 이상 현상을 낳고 있다는데 있다.
부동산에 투자할 길이 막히고 은행 금리가 낮아지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식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주식 시장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묻지마 주식 투자를 하는데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저금리로 빌린 돈으로 주식을 사는 즉, 빚투자가 늘면서 연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정상적인 주식 투자를 위해서는 주식 시장에 대한 사전 지식은 물론 초보자가 알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와 매매 원칙 등을 숙지해야 하는데 최근 진입하는 '주린이'들 대부분은 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주식 투자를 통해 짧은 기간 안에 거액을 벌었다는 무용담이나 주변 사람들의 근거없는 성공담으로 귀가 솔깃해서 주식시장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주식시장은 진입하는데 어떤 장벽도, 어려움도 없는 그야말로 문턱이 낮은 무주공산이다. 최근 젊은 주식초보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젊은 직장인들이 틈만 나면 삼삼오오로 모여 주식 변동표를 보면서 투자 관련 정보와 수익 경험을 나누느라 업무에 소홀해서 상사의 지적을 받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주식 매매는 당연히 투기가 아니라 투자인데도 적지않은 투자자들이 사실상 투기 행위로서의 주식 매매를 하고 있다. 근거없는 일확천금의 꿈을 꾸면서 요행과 운수에 거액을 거는 도박과 유사한 투기 시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빌린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하다가 손해를 보면 다시 빠른 시간 안에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주식을 사는 비정상적 주식 매매가 반복된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주식을 선택하는게 아니라 주식이 사람을 선택하는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더 이상 주식 시장이 변질되지 않고 건강하고 건전한 주식 투자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수익을 내기 위한 수백만 주식 투자자들의 정당한 노력과 희망이 관철되는 주식 시장의 정상화를 기대한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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