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화장실을 벗어난 최강희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

입력 2010.12.05. 12:37 댓글 0개
이문원의 문화비평



이선균, 최강희 주연 영화 ‘쩨쩨한 로맨스’가 호조의 스타트를 보였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1일 개봉한 ‘쩨쩨한 로맨스’는 첫 3일 간 23만4829명을 모아 동기간 1위를 차지했다. 주말 스코어가 합산되면 폭발적이랄 것까진 아니더라도 꽤 기대되는 수준의 첫 주 성적이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영화계와 미디어가 ‘쩨쩨한 로맨스’에 거는 기대는 첫 주 예상치가 예시하는 중박 히트 수준을 크게 넘어선다. 아직까지 2010년 연간통산 흥행 1위작은 617만여 명을 모은 ‘아저씨’다. 그대로 기록이 굳어질 경우 2010년은 연간 1위작이 2002년 이래 최저 관객동원 수치를 기록한 해로 남게 된다. 이런 부진을 씻고 2010년의 체면을 세워줄 영화, 자연스럽게 2011년까지 한국영화 흥행구도를 이어줄 영화는 남은 개봉작 및 개봉예정작 중 눈 씻고 찾아봐도 ‘쩨쩨한 로맨스’ 외엔 없다는 것이다.

근래 들어 12월은 로맨틱 코미디 대박을 노리기 가장 좋은 시기로 여겨지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2006년작 ‘미녀는 괴로워’, 2008년작 ‘과속스캔들’ 등 500만 이상 초대박급 로맨틱 코미디들은 모두 12월에 개봉됐다. 봄~가을 시즌의 로맨틱 코미디는 아무리 크게 터져도 300만 내외였다.

물론 꽤나 소박한 첫 주 예상치 탓에 ‘쩨쩨한 로맨스’에 너무 큰 기대는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미녀는 괴로워’도 ‘과속스캔들’도 첫 주 성적은 딱히 폭발적이지 않았다. 로맨틱 코미디 흥행은 본래 점화가 더디고, 입소문에 크게 의존한다. ‘쩨쩨한 로맨스’ 어깨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쩨쩨한 로맨스’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 대박’ 기대보다 더 생각해볼 부분이 있는 영화다. 일단 로맨틱 코미디 분류 내에서 섹스 코미디에 속하기 때문이다. 섹스 코미디는 본래 대박이 나기 어려운 서브장르다. 먼저 관람연령대가 18세 이상으로 올라가버려 흥행한계가 뚜렷하다. 또한 누가 봐도 무난한 일반 로맨틱 코미디와 달리 일정 부분 불쾌감을 느껴 꺼릴 관객층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역대 한국 섹스 코미디 최고 흥행기록은 2002년 ‘색즉시공’이 기록한 409만9000명대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나 ‘쩨쩨한 로맨스’는 여기서 한 번 더 입장이 꼬인다. ‘쩨쩨한 로맨스’는 ‘색즉시공’과는 또 다른 경우라서다. ‘쩨쩨한 로맨스’는 이른바 ‘여성용 섹스 코미디’다. 섹스 코미디라는 서브장르 내에서도 희소한 타깃 설정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별달리 시도된 바조차 없다. ‘쩨쩨한 로맨스’의 흥행 추이를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이유다. 그 추이에 따라 국내에서 제대로 실험된 바 없는 형식에 대해 데이터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이 ‘여성용 섹스 코미디’라는 건 대체 뭘까.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딱히 명확한 기준이 서있는 건 아니다. 본래 서브 장르 아래의 타깃 갈래에까지 분명한 장르 규범이 나오기란 어렵다. 그러나 일단 여성 캐릭터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핵심 축이어야 하며, 해당 여성 캐릭터의 설정과 그에 따른 배경 설정에서 일반 남성용 섹스 코미디와 차별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 정도는 분명하다.

첫째, 중심 여성 캐릭터는 10대여선 안 되며, 20대더라도 대학생이라는 설정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10~20대 초반 설정이 되면 어쩔 수 없는 영화는 성장영화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나 이를 섹스라는 소재와 연결지어 버리면 결국 남성용 섹스 코미디로 가는 수밖에 없다. 성장기의 성적 욕구라는 측면에서 소재화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은 아무래도 남성 쪽이 여성 쪽보다 더 코미디적 성격에 잘 맞기 때문이다. 10대 소녀의 성적 욕구는 일종의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요구해 코미디 소재로는 맞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용 섹스 코미디는 20대 중후반 이후 여성을 요구하게 된다.

둘째, 이 20대 중후반 이후 여성 캐릭터는 여성이 동경할 만한 직업 또는 생활을 누리고 있거나, 최소한 동성으로서 흥미를 느낄 만한 일에 종사해야 한다. 이는 섹스 코미디뿐 아니라 여성용 극예술 콘텐츠 전체가 지니는 속성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국내 여성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모은 ‘섹스 앤 더 시티’다. 대도시에서 선망 받을 만한 직업(칼럼니스트, 큐레이터, 변호사, PR매니저)에 종사하며 왕성한 성생활을 누리고, 그에 따른 섹스 에피소드들을 잔뜩 지닌 캐릭터들이다.

다음으로 섹스를 묘사하는 영화의 형식 차이를 들 필요가 있다. 남성용 섹스 코미디는 뭐니뭐니해도 시각적 섹스 개그에 중점이 가게 된다. 남성의 성적 충동이 시각적 자극에 종속돼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종착점은 미국영화 ‘포키스’와 ‘아메리칸 파이’에서부터 한국영화 ‘색즉시공’과 ‘몽정기’ 등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화장실 개그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여성용 섹스 코미디는 다를 필요가 있다. 시각적 섹스 개그나 섹스 묘사보다는 대사에 치중해야 한다. 앞선 ‘섹스 앤 더 시티’가 인기를 끌었던 것도 알고 보면 노골적인 섹스 묘사들보다는 섹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며 농담의 소재로 삼는 여성 캐릭터들의 수다 장면들 덕택이었다. 따라서 화장실 개그로는 절대 가선 안 되며, 오히려 일정 부분 ‘품위’를 찾을 필요가 있다. 섹스에 대한 대화가 많은 우디 앨런 영화들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남성보다 여성 관객이 더 많다.

시대 배경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일단 현대 배경이 유리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근대 이전 배경의 섹스 코미디는 1980년대부터 꾸준히 ‘남성전용’이라는 이미지로 굳어버려 편견이 생긴 상태다. ‘변강쇠’, ‘뽕’, ‘가루지기’ 시리즈들이 남긴 폐해다. 근래 들어 드라마 장르에서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미인도’ 등 최근작들이 빼어난 영상과 섬세한 인물묘사 등으로 여성 관객을 끌어 모으는데 성공했지만, 코미디 장르에서는 여전히 ‘음란서생’, ‘가루지기’ 리메이크 등 남성용 음담패설들이 절대다수였다. 편견은 이어진다.

또한 섹스에 대한 입장차가 있다. 여성이 섹스 코미디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음담패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 내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고파 한다. 섹스에 대해 ‘쿨’해지고파 하는 욕구다. 이런 욕구가 충족되려면 아무래도 동시대 배경으로 동세대 여성이 대리만족시켜 주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그리고 물론, 여성용 섹스 코미디의 백미는, 섹스와 관련된 소재가 차용됐을 뿐이지 이를 제외하면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형식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는 점이다. 위 요건들 중 상당수를 보유했던 임상수 감독의 1998년작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정작 여성 관객들로부터 큰 환영을 못 받았던 이유다. 동경할 만한 커리어 우먼들이 자유분방하게 섹스하며 우스운 상황을 다수 만들어냈지만, 결정적으로, 로맨틱하질 않았다. 오히려 반(反)로맨스에 가까웠다.

이렇게 놓고 보면, ‘쩨쩨한 로맨스’는 신기할 정도로 여성용 섹스 코미디의 요건들에 딱딱 잘 들어맞는다. 일단 이선균과 최강희의 공동주연이긴 하지만, 정작 영화 속에서 개그 펀치라인은 대부분 최강희가 날리고 이야기 자체에 차별성을 주는 것도 최강희 캐릭터의 존재이기에 ‘여성이 끌고 나가는 이야기’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거기다 최강희는 우리 나이 34세로 절대 성장기라 볼 수 없으며, 영화 속에서도 그 정도 나잇대 역할이다. 20세 이상으로 설정된 영화의 관람층을 생각해볼 때도 적절한 나잇대다. 나이를 벗어나서도, 최강희는 애초 여성층에게서 지지도가 높은 여배우다.

다음으로 최강희가 분한 다림은 극중 성인잡지 번역 일을 하는 섹스 칼럼니스트로 설정돼있다. 딱히 여성이 동경할 만한 직업이라 보긴 어렵지만, 충분히 여성이 흥미를 느낄만한 직업인 건 맞다. 여성은 대부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직업군에서 여성이 활동하는 모습에 감흥을 받기 때문이다. 그것도 동경이라면 일종의 동경이다. 또한 요즘 같은 20대 취업 빙하기에 사회적으로 너무 잘 나가는 여성은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좀 이상한’ 직업군 설정이야말로 정답일 수 있다.

거기다 ‘쩨쩨한 로맨스’는 성인만화가 남성과 섹스 칼럼니스트 여성 사이 ‘대사’를 중심으로 섹스 개그들이 펼쳐지고 있으며, 당연히 현대 설정이고, 섹스 관련 소재를 제외하고 나면 대단히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공식을 따르고 있다. 외려 감정묘사가 일정부분 절제된, 세련된 느낌의 로맨틱 코미디다. 모든 요건들의 시계태엽처럼 딱딱 들어맞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앞서 언급했듯, ‘쩨쩨한 로맨스’의 흥행 추이다. 과연 여성용 섹스 코미디가 어디까지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다. 세련되면서도 야릇한 음담패설에 관심을 보일 여성층과 어찌됐건 섹스 소재 영화에는 일단 눈길을 쏟는 남성층의 결합이 어느 정도 수치까지 결과를 내줄까다. 20~30대 여성층이 영화 흥행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한국 극장가 현실, 그리고 점차 데이트코스화 경향이 짙어가는 영화관람 패턴이라면, ‘쩨쩨한 로맨스’가 보여줄 흥행은 향후 수년 이상 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점이자, 어쩌면 한국영화계에 단골 흥행 카드 하나를 추가시키게 될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