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사설> 80년 5월 광주 진실 지켜낸 교사와 학생들

입력 2020.11.03. 18:40 수정 2020.11.03. 20:04 댓글 0개
사설 현안이슈에 대한 논평

엄혹했던 80년대 초 한 교사의 위험을 무릅쓴 노력에 원본 그대로 보존된 귀중한 5·18기록물이 주위를 숙연케하고 있다.

기록물을 지켜낸 이는 석산고에 재직했던 고 이상윤 교사다. 그로 인해 학생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5·18의 실상이 생생한 글로 전해지게 됐다. 이같은 사실은 기록물이 작성된 지 39년만에 세상에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해당 기록물이 공개된 건 어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다목적강당에서 열린 '오월, 그날의 청소년을 만나다'란 주제의 학술대회에서였다. 기록물은 80년 5월을 두 눈으로 지켜봤던 석산고 1학년생들이 이듬해인 81년 2월에 작성한 작문글이다. 학생들의 글 속엔 전남도청 앞 계엄군의 무차별적 만행, 총탄에 맞아 숨진 한 청년의 마지막 모습 등 그날의 참상이 가감없이 담겼다.

이 글은 국어 과목을 담당했던 이 교사가 1학년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내 준 과제물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신군부의 감시와 탄압으로 감히 5·18을 입에 담기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더구나 학교에서 5·18을 주제로한 과제물을 내준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교사의 용기에 학생들이 힘을 보탰다. 성적에 반영하지는 않겠다는 전제가 달렸는데도 1학년 학생 568명 중 186명이 기꺼이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낀 5·18을 글로 적어 과제물을 완성했다.

이 글들이 공개되기 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외부에 알려질 경우 자칫 학생들이 한자 한자 써내려간 역사적 기록들이 강탈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교사는 고민 끝에 아무도 모르게 이 글들을 대학 후배이자 같은 학교 동료인 박형민 교사에게 맡겼다. 글 만큼은 지켜야 했다. 박 교사에 의해 6년간 감춰졌던 이 글들은 다시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33년간 보존된 뒤 지난 7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수장고로 옮겨졌다.

5·18 40주년, 광주의 상흔은 생생하지만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흐릿하다. 왜곡과 폄훼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고 이상윤 교사와 186명의 학생들이 지켜낸 그 증언기록의 가치가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들의 용기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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