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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에서 어른 되기와 교육
입력 2020.10.26. 17:37 수정 2020.10.26. 17:43 댓글 0개며칠 전 핀란드의 총리 산나 마린(35)이 클리비지 룩의 모습으로 잡지 트렌디의 10월 표지모델로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다. 두 가지 의견이 맞섰는데 '정치인으로서 신뢰를 떨어뜨린다'와 '가부장적인 사회문화를 타파하는 용기 있는 여성의 행동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산나 마린의 옷차림보다는 그녀의 나이와 핀란드의 청년을 향한 국민의 신뢰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미혼의 산나 마린은 34세의 나이에 총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30대의 미혼청년이 총리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의 정서에서는 불가능한 것 같다.
교육은 크게 가정, 학교,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가정에서부터 우리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공부만 해라. 나머지는 대학가서 해라'를 통해서 아이들은 가정과 사회에 대한 어떤 의무와 책임감 없이 대학진학만 생각하고 자란다. 대학진학 후에도 부모는 다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취업준비만 해라'로 또 한번 무책임을 강요하고 어른이 될 기회를 박탈한다.
어떤 강연에서 외국어고등학교를 거쳐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엄마, 이제 나 뭐해?'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길을 고민할 시간도, 여유도 주지 않고 부모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아바타로 키우고 있어서 이런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매우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청년들이 놀라운 기술을 개발하고 창업하는 모습도 보고 있다. 또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살고 있는 청년들도 있다.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하지만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일반적으로 우리 기성세대가 아이들을 책임감 있는 청년으로 키우고 있는가, 그래서 어른으로서 신뢰하고 그렇게 대접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1960년 4·19혁명 때, 나라를 바로잡겠다고 거리로 뛰어나간 수많은 고등학생과 청년들이 있었고, 온 가족을 책임지던 국제시장의 '덕수'들이 있었다. 한때는 김영삼, 김대중처럼 26세에 선출된 국회의원도 있었고, 각광을 받던 30대의 정치인들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70, 80년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청년들이 있었으며, 농촌과 노동자들을 살리겠다고 대학생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농촌과 노동운동에 투신하던 청년들이 있었다.
그래서 덕분에 세상은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청년들은 생기를 잃고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채 나라가 늙어가고 있다.
올해 4월 총선에서 세대교체를 외치며 2030의 청년들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3.4%의 공천신청에 그치고 말았다. 과거 민주화, 세계화, 산업화의 주역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청년들이 변변치 못해 할 수 없이 나라의 짐을 떠안고 있는 것일까?
감사하게도 우리 교육부의 교육방향은 책임감 있는 '민주시민 육성'이다. 그러나 지난 4·15 국회의원 선거 때, 만 18세의 청소년들이 '너는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해'의 분위기, 명문대학교에 몇 명을 합격 시켰는지가 고등학교의 평가지표가 되는 환경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소중한 표를 적절하게 행사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도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산나 마린과 같은 34세의 청년에게 기꺼이 나라의 살림을 맡길만한 성숙한 어른으로 기대하며 교육해야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성세대의 잘못된 가치와 교육관으로 아이들에게 어른이 될 기회를 박탈하고, 그 결과 후세대에 대한 신뢰가 없는 나머지 세대교체가 막혀있는 듯하다. 이제는 제발 아이들을 어른으로 키우고 그들이 세상을 자신들의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 기회를 주어보자. 사실은 아이들이 정말 똑똑하다.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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