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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행불자? 28년간 의문 '부엉산 유골'

입력 2017.09.25. 13:55 수정 2017.09.25. 16:13 댓글 0개
전남대 법의학교실서 유골 보관···유전자 재검사 필요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지난 1989년 1월 광주 동구 녹동마을 인근 일명 '부엉산' 기슭에서 발견됐던 유골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였을까?

유골이 발굴된 지 28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달한 현재, 신원 확인을 위한 절차를 다시 밟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에 따르면 지난 1989년 1월13일 광주 동구 녹동마을 인근 '부엉산' 기슭(해발 400m)에서 머리 왼쪽에 심한 상처를 입은 20대 남성의 유골이 옷가지와 함께 발견됐다. 유골의 두개골에는 지름 5㎝ 가량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유골은 1980년 5월말께 뱀을 잡기 위해 산에 올랐다 피투성이가 된 채 숨져 있는 20대 남성을 발견한 주민 윤모(당시 26세)씨의 신고로 9년 만에 발견됐다.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보고서에는 윤씨가 유골 발견 당시 겁에 질려 낙엽과 풀, 흙으로 시신을 덮고 내려온 것으로 돼 있다. 이후 1987년 7월 다시 현장을 찾았고, 두개골이 밖으로 나와 있는 모습을 보고 바위 아래 유골을 묻었다.

이후 1989년 1월11일 주남마을에서 발견된 암매장(추정) 유골 발굴 작업을 TV로 보고 용기를 내 5·18광주민중항쟁 부상자 동지회에 신고했다.

또 유골과 100여m 떨어진 곳에서는 1980년 5월 계엄군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녹슨 탄환 1500여발과 M1 탄창 30여개 등이 발견됐다.

부엉산 일대는 5·18 당시 7공수와 11공수가 주둔했던 곳이다. 인근 도로에서는 1980년 5월23일 시민군 미니버스가 습격당해 15명이 현장에서 숨졌으며 부상을 당한 3명 중 2명은 주남마을 뒷산으로 끌려가 사살된 뒤 암매장됐다. 이 시신은 항쟁이 끝난 그해 6월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

이 때문에 유골 발견 당시 5·18 희생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유골을 조사했던 서울대 이정빈(법의학) 교수는 '구멍 난 두개골에서 총상 흔적이 안 보이고 사망 시기는 길게 봐도 5년 이내'라고 못 박았다.

얼마 뒤 이를 뒤집는 감정 결과가 나왔다. 유골의 두개골 부분을 검증한 연세대 김종렬(치의학) 교수는 '발견 시점으로부터 최소 6년 전 사망했다'는 내용과 '총격 가능성'을 담은 감정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같은 해 5월 이정빈 교수가 '5년 이상된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번복했지만 '부엉산 유골'은 이미 대중의 관심 밖에 놓인 뒤였다. 유골의 5·18 연관성도 끝내 가려지지 않았다.

현재 유골은 박종태 전남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보관 중이다.

법의학교실은 광주시가 2000년 11월부터 확보한 5·18행불자 130가족, 295명의 혈액을 보관하고 있다. 확보된 혈액을 비롯해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재 다시 한 번 유전자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20~27년이 흘렀기 때문에 유전자 비교를 했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다"며 "광주시가 최근 5·18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필요하고 요청이 있다면 유전자 검사를 다시 해보겠다. 단 1명이라도 행방불명자를 찾는다는 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gugg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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