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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대로]北, 무력도발 직후 '대남 비난-돌연 사과' 패턴 반복
입력 2020.10.25. 09:00 댓글 0개1968년 1·21 사태부터 도발 후 입장 표명 반복
김상범 "북, 사건 발생 후 남북대화 제안해와"
※ '군사대로'는 우리 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박대로 기자를 비롯한 뉴시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군의 이모저모를 매주 1회 이상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북한이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원 사살 후 우리측에 사과한 가운데 이 같은 사과와 유감 표명 형태가 수십년째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북한은 무력도발 직후에는 대남 비난에 주력하다가 대내외 분위기를 살핀 뒤 돌연 사과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김상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조교수가 최근 발표한 '북한의 무력행위에 대한 대남 사과·유감 표명 사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68년 1월21일 밤부터 22일 새벽까지 북한 민족보위성 산하 정찰총국 소속 124부대 공작원 31명이 청와대 인근에 침투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시도했다.
북한은 사건 발생 하루 만인 1월23일 노동신문 기사를 통해 사건을 전면 부정하며 이를 우리측 반(反)박정희 세력들의 영웅적 투쟁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북한은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사건 발생 4년4개월여가 지난 1972년 5월4일 김일성 주석은 방북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구두로 유감을 표명했다.
김일성은 당시 "그것은 대단히 유감스런 사건이었다. 사건은 전적으로 우리 내부의 극좌 모험주의자들이 한 것이지, 나의 의도나 당의 의도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내가 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고 했겠는가? 사회주의는 김일성을 죽인다고 해서 붕괴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 최고지도자가 자신들의 무력행위에 의해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우리측 당국자에게 직접 유감을 표한 최초의 사례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시간이 흐른 뒤 이 사건을 언급했다. 김정일은 2002년 5월1일 박근혜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와 백화원 영빈관 회의실에서 진행된 1시간 독대 자리에서 청와대 기습 사건에 대해 재차 사과했다. 김정일은 "당시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질렀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다 응분의 벌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1·21 사태 후 김일성 주석의 유감 표명은 남북이 미·중 데탕트에 편승해 대화에 집중하던 시기에 나왔다. 김일성은 남북 간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북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남북 대화를 활용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김일성 유감 표명 이후 남북은 1972년 5월부터 1973년 8월까지 남북적십자예비회담 5회, 공동위원장 회의 3회, 본회의 3회 등 모두 11회에 걸쳐 남북회담을 개최했다.
1976년 8월18일에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했다. 미군 헌병 2명이 북한 경비병 구타에 의해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장병 5명과 미군 장병 4명 등 모두 9명이 다쳤다.
인민군 전체에 전투태세 명령까지 내렸던 북한은 사건 발생 3일 후 갑자기 사과했다. 북한은 유엔군에 8월21일 비공개 군사정전위원회 개최를 요구한 뒤 미국에 편지를 전달했다.
북한은 편지에서 "이번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일어난 사고는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앞으로 그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귀측에 도발행위의 중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우리측은 결코 먼저 도발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도발행위가 일어났을 때에만 자기방어적 조치를 위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관된 입장입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자신들의 무력행위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 대해 유엔군사령부에 문서 형태로 유감을 표명한 최초의 사례였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에도 북한은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1996년 9월18일 새벽 강릉시 안인진리 부근 해안도로에서 북한 소형 잠수함이 좌초된 것이 확인됐다. 군인과 경찰, 예비군 등 150만명이 투입돼 49일 동안 소탕작전이 벌어졌다. 무장간첩 1명이 생포됐고 13명이 사살됐다. 자폭으로 추정되는 북한 승조원 사체 11구가 발견됐다.
사건 직후 생존자 송환을 요구하며 우리측을 비난하던 북한은 사건 발생 102일 후인 같은 해 12월29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위임에 의하여 막심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1996년 9월 남조선 강릉 해상에서의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선반도에서의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위해 유관 측들과 함께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사과는 자신들의 대남 무력 행위로 인한 물적·인적 피해에 최고지도자의 의중임을 명확히 하며 공개적으로 우리 정부에 유감을 표명한 최초의 사례였다.
우리 외무부와 통일원은 수락할 만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언론도 북한이 외교적 표현상 최고에 해당하는 깊은 유감을 표명한 것은 놀라운 일로 평했다.
제2연평해전 역시 북한이 사과한 사건이다.
2002년 6월29일 연평도 근해에서 북한의 함정이 우리 해군의 참수리 고속정 357호에 선제 기습 포격을 감행해 고속정은 침몰하고 윤영하 대위를 포함한 장병 6명이 희생됐다.
사건 후 우리측을 비난하던 북한은 사건 발생 26일 후인 7월25일 남북장관급회담 김령성 북측 단장 명의로 우리측 수석대표인 정세현 통일부 장관 앞으로 전화통지문을 보내 유감을 표명했다.
북한은 "북측은 동 전화통지문을 통해 서해 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서울에서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을 개최하고 이미 쌍방 사이에 합의한 남북철도 연결 문제, 이산가족 문제 등 4.5 공동보도문 이행문제와 그 밖의 관심 있는 문제들을 원만히 협의하기 위해 8월초 금강산에서 남북장관급회담 대표들의 실무접촉부터 가지자고 제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우리 정부에게 전화통지문이라는 형식으로 유감을 표명한 첫 사례였다.
박왕자 피격 사건 때도 북한은 유감을 표하긴 했다.
2008년 7월11일 새벽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우리측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해안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북한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7월12일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북측은 "남조선 관광객이 금강산에 왔다가 7월11일 새벽 4시50분경 우리 군인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짧게 밝혔다.
이후 북한은 8월3일 조선인민군 금강산지구 군부대 대변인 특별담화를 통해 남한 관광객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사건임을 재차 강조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 사건 후 재발방지 의사를 밝혔다. 2009년 8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초청으로 방북했고 8월16일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금강산 사고와 관련해 "앞으로 절대 그럴 일 없을 것"이라며 재발방지 구두약속을 했지만 사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후 남북관계가 급속히 악화됐다.
연평도 포격 때도 북한은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2010년 11월23일 북한은 우리 군의 연평도 인근 포격 정례 훈련을 이유로 연평도 내 군사시설뿐만 아니라 민간인 거주지역과 관공서에 170여발의 포격을 감행했다.
포격 후 자위적 조치였다고 주장하던 북한은 사건 발생 3일 후인 11월27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 사실이라면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 책임은 이번 도발을 준비하면서 포진지 주변과 군사시설 안에 민간인들을 배치해 인간방패를 형성한 적들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2011년 2월24일 국방위원회 검열단 진상공개장을 통해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모두 책임은 체계적으로 도발을 모의하고 실행한 한미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때 북한은 유감을 표명했었다.
2015년 8월 4일 수색작전 중이었던 육군 부사관 2명이 경기도 파주시 인근 비무장지대 남측 감시초소(GP) 추진 철책 통문 하단에 북한이 설치한 목함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었다.
북한은 사건 발생 21일 후인 8월25일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통해 '8·25합의' 공동보도문을 보도하며 유감을 표명했다. 당시 북한은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군인이 부상을 당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김정일 사후 김정은 당시 노동당 제1비서가 북한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 발생한 최초의 우리 측 피해 사례였다.
남북은 8·25 합의를 통해 목함지뢰 사건으로 인한 긴장을 완화하려했지만 남북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급변사태와 북한붕괴론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고수했으며 북한도 체제보위를 위한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김상범 조교수는 "북한의 무력행위로 인해 남한 국민들의 재산과 안전에 피해를 준 사례를 통해 사건 발생 후 북한은 남북관계 관리 차원에서 남북대화를 제안한 적이 있다"며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남북 간 접촉이나 회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건 규명과 재발 방지 등 충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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