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이브닝브리핑] 의미와 형태

입력 2020.10.14. 17:52 수정 2020.10.14. 17:52 댓글 0개
빗물이 맺힌 평화의 소녀상. 사진=뉴시스

"소녀상"

베를린이 세계 속 '양심의 수도'가 된 배경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무릎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1970년 서독 총리였던 그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 유대인 추념비를 찾아 무릎을 꿇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과오를 독일인들을 대표해 사죄한겁니다. 훗날 이 사죄는 '브란트의 무릎꿇기'(Brandt Kniefall)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역만리 타국 양심의 수도에서 총성없는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베를린 거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 위기에 처해지면섭니다. 소녀상은 독일 내 민간단체인 코리아협의회가 정의기억연대의 도움을 받아 지난 달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했습니다. 문제는 설치를 허가한 미테구청이 "14일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뜯어내겠다"고 지난 7일 통보하면서 불거졌습니다.

철거 명령과 함께 미테구는 '국가 간 역사적 문제에 한쪽에 서는걸 피해야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소녀상의 초점을 단순한 국가간 분쟁으로 짚어냈다는 지적입니다. 현지인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규탄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13일(현지시각) 미테구가 한 발자국 물러섰습니다. 독일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방침입니다.

소녀상은 단순 국가 분쟁을 상징하지 않습니다. 소녀상은 갈등의 역사 속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입은 모든 당사자들을 추모한다는 의미를 갖고있습니다. 2차세계대전 중 전범국가의 만행으로 희생당한 여성 피해자들도 응당 포함됩니다. 때문에 양심의 수도에 세워진 소녀상은 더욱 특별합니다.

브란트가 무릎을 꿇어가며 일군 의미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브란트 본인마저도 정치권에서는 '올바른 사과의 형태'만으로 굳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소녀상 또한 걱정됩니다. 의미 대신 양심의 수도가 공인하는 '분쟁의 형태'로 남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의미는 사라지고 형태만 남고있습니다. 이영주기자 lyj2578@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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