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현' 한명구 "숨어있던 분들 고통 위로하는 연극"
입력 2017.09.24. 13:22 댓글 0개【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3무(無) 배우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름·나이·인생 없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는 얘기다. 배우 지망생과 신인 배우들 사이에서 경전처럼 떠도는 말이다. 지난 2011년 '제21회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배우 한명구(56)의 수상 소감이다.
한명구가 자신의 소신대로 10월1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에어콘 없는 방'(작 고영범·연출 이성열 백수광부 대표)에서 자신의 이름·나이·인생을 지웠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한국·중국 상하이·미국을 떠돌며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었던 실존 인물 피터 현(1906~1993)으로 살고 있다.
최근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난 한명구는 "피터 현의 '고민과 아픔은 무엇일까', 이 양반의 ‘트라우마는 무엇인가'라고 계속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피터 현은 1919년 3·1 운동기 한국 독립운동을 상하이와 세계에 알린 현순 목사(1880~1968)의 아들이다. '박헌영의 첫 애인', '한국판 마타하리' 등으로 구설에 오르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평양에서 박헌영과 함께 처형된 앨리스 현(1903~1956)의 동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피터 현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930년대 좌파 예술가들이 생동한 뉴욕에서 연출가로서 반전 인형극 '황소 페르디난드'(Ferdinand the Bull)와 노동자의 봉기를 다룬 아동극 '비버들의 봉기'(Revolt of The Beavers)를 선보인 바 있다는 기록이 있다.
조국을 떠나 이민자로서 연극 작업을 해온 재미 극작가 고영범이 자신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는 피터 현을 불러냈고, 한명구가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연극 '레드'의 마크 로스코를 비롯 현존하는 역사적인 인물들을 맡아온 한명구는 피터 현에 대해 "실제 했던 인물이지만 영웅적인 면모가 없어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의 큰 트라우마 세 가지에 집중하며 캐릭터를 빚어냈다.
"첫 번째는 레드 콤플렉스, 두번째는 미국에서 인종 차별로 인한 꿈을 접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 세 번째는 북한에서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진 누나에 대한 부채감이에요."
지난해 '제6회 벽산희곡상'을 수상한 연극은 피터 현의 이 트라우마를 하룻밤에 그려낸다. 일흔살을 넘긴 피터현은 1975년 건국공로자로 추서된 부친 현순 목사의 유골을 국립묘지에 안장하기 위해 귀국한다.
오랜만에 고국땅을 밟은 피터현은 낯설기만 하다. 당시 남한은 반공의 극단을 달리던 유신 체제였다. 작품의 원제이기도 한 '유신호텔 503호'에 머문 그는 에어컨(연극 제목의 '에어콘'은 부러 옛날식 표기를 사용한 것)도 없는 답답하고 작은 방에서 정신적 분열을 겪는다.
러닝타임 100분 중 약 90분을 무대 위에 있는 한명구는 피터현의 과거와 현재의 감정을 날 것으로 겪어낸다. 커튼콜에 그의 얼굴과 몸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다.
한명구는 "피터 현이 겪는 트라우마는 우리나라 역사의 굴곡이 담겨 있다"면서 "단순히 피터 현만의 이야기가 아닌 시대의 혼란기를 겪은 앞선 모든 세대들의 보편적인 트라우마 이야기"라고 해석했다.
2년 전에 이 작품 출연 제의를 받았다는 한명구는 작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했을 때 현순 목사의 사진을 보고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했다. 이전까지 그도 크게 관심을 두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한명구는 "현순 목사 뿐만아니라 피터 현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면서 "배우란 직업은 기억하지 않은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일을 하죠. 평생 디아스포라로 살며 굉장히 무거운 사람으로 살아간 그 분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은 숨어 있었던 분들의 고통을 위로하는 자리에요.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리죠. 피터 현의 아픔은 우리의 아픔이죠."
지난해 전무송·박정자·손숙·정동환·김성녀 등 평균 66세의 연극계 거목들이 출연한 연극 '햄릿'에서 막내엿던 한명구는 사실 작년 30주년을 넘긴, 대학로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다.
1984년 오태석 연출이 이끄는 극단 목화의 양식화된 창단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아 1985년부터 이 극단의 단원 생활을 했다. 이후 같은 극단의 1986년 연극 '아프리카'로 데뷔했다.
"생계를 꾸리기는 힘들었지만 행복하고 즐겁게 연극을 고민했던 행복한 시절"이라고 당시를 회상한 한명구는 사도세자 이야기를 다룬 '부자유친', 자신의 대표작인 된 극단 산울림의 '고도리를 기다리며'를 통해 주목 받았다.
EBS '다큐프라임' 출연과 현재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스파프) 작품들 공연에 앞서 객석에 전달되는 안내 녹음 멘트를 맡을 정도로 안정된 발성과 울림을 자랑하며 명실상부 대표적인 중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지금의 한명구는 젊은 시절 자신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 '에어콘 없는 방'에서 피터 현이 젊은 시절 자신과 만나는 순간과 겹쳐진다.
한명구는 "피터 현처럼 저 역시 젊은 시절 저에 대해 연민을 갖고 있죠"라면서 "적극적으로 투쟁적으로 좀 더 에너제틱하게 밀어붙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젊었을 때 마음을 접지 않았다면 더 떳떳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있죠. 정공법이 필요했다는 거죠. 늙은 피터 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젊은 피터에게 무한한 연민을 갖고 있을 거예요. 젊었을 때 자신을 봤을 때 반갑지만 괴로운 거죠. 그래서 극 중에서 젊은 피터 현을더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사람 분석하는 것이 자신의 직업이라는 한명구는 30년 동안 연극을 해오면서 반무당이 됐다고 했다. 갈수록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많아지고 관심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피터 현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그에게 "아픔 속에서 자리를 부정하는 가운데서도 열심히 사셨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건넸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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