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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를 만난 심리학자는 왜 동물권익 운동가가 됐을까

입력 2017.09.23. 09:20 댓글 0개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 번 더 말하면 혼란이 정리되기라도 할 것처럼 세커드 박사가 다시 말했다. 처음에는 나를 놀리는 줄 알았다. 어쩌면 대학원 신입생 모두에게 '말하는 침팬지'가 있다고 장난을 치는 건지도 몰랐다."(26쪽)

미국 심리학자 로저 파우츠·스티븐 투켈 밀스 출판사 리빙 플레닛 프레스 대표가 쓴 '침팬지와의 대화'가 국내 번역·출간됐다.

무명의 젊은 심리학자가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장하고 열정적인 동물 권익 운동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한 편의 성장기다. 공생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와 생명의 의미를 우리에게 되묻는 침팬지들의 생존기이기도 하다.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자의 98.4%가 일치한다. 침팬지는 유전적으로 고릴라나 오랑우탄보다 인간에 더 가깝고, 아프리카 코끼리와 인도 코끼리 사이보다 인간과 침팬지와의 사이가 더 가깝다는 뜻이다.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침팬지들의 언어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침팬지의 언어 사용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그것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행동 강화에 따른 단순한 반응일 뿐이라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말 한스의 경우처럼 실험 진행자의 무의식적 행동 단서에 따른 결과라거나, 자연 상태의 침팬지가 흔히 보이는 손짓에 과학자들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반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파우츠는 더욱 엄격한 실험을 진행하고 정밀하게 관찰, 기록한다. 그리고 침팬지들이 개별 단어의 학습은 물론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만드는 언어적 확장성과 연결된 단어의 순서를 바꿈으로써 문장의 의미를 구분할 수 있는 유연성까지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나는 워쇼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인간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처럼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떨까 종종 생각해 본다. 예를 들어서 나의 외증조부가 자신에게 흑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인정하고 새로 찾은 동족을, 자신이 부리던 노예를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들킬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자기 혐오 때문에 흑인들을 더 탄압했을까? 그런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당신이나 나는 어떻게 할까?"(474~475쪽)

"그러나 나는 침팬지들의 삶에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매일 바깥에 나가는 것이었다. 침팬지들은 심리학과 건물 3층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편이었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도, 얼굴에 햇살을 느끼지도, 큰 나무에 오르지도 못했다. 침팬지는 인간과 달리 나무에 오르도록 타고났고,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워쇼 가족이 야외에서 햇살을 받으며 나무에 오르는 자유를 누리기 바랐다."(382~383쪽)

동물 권익이 파괴된 실험실 현장에 대한 묘사는 우리에게 인간성의 역설적 의미를 고민하게 만든다.

어느 과학자와 어린 챔팬지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되는 이 여정의 끝은 가슴 뭉클한 우정, 용기, 연민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528쪽, 허진 옮김, 열린책들, 2만5000원.

snow@newsis.com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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