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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화 "증명이 계속되면 선택의 폭이 넓어져요"

입력 2017.09.23. 06:50 댓글 0개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뮤지컬스타 정성화(42)의 삶을 뮤지컬로 옮긴다고 하자. 도전을 거듭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될 것이다.

1994년 SBS 공채 3기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2003년 '아이 러브 유'로 뮤지컬에 입문했다. 지금의 대세 뮤지컬배우가 되기까지 매번 편견에 맞섰다.

2007년 톱스타 조승우와 함께 번갈아 가며 '돈키호테'를 연기한 '맨 오브 라만차'를 통해 '코믹 배우'가 아닌 '정극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2009년 초연한 뮤지컬 '영웅'에서 우직한 '안중근' 역을 맡아 이 뮤지컬을 자신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었다. 2012년 라이선스 초연한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그에게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안긴 '킹키부츠'의 '롤라'도 마찬가지다.

정성화는 한 번쯤은 편하게 갈 법도 한데, 또 새로운 역에 도전 중이다. 오는 11월12일까지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레베카'의 '막심 드 윈터'다.

네 번째 시즌을 맞을 때까지 이 역을 연기한 배우는 류정한·민영기·엄기준·송창의·민영기 등이다. 고뇌하는 섬세한 캐릭터답게 늘씬한 미남풍 배우가 주로 맡았다. 정성화는 반면 선이 굵은 캐릭터를 맡아왔고 풍모도 호방하다.

최근 블루스퀘어에서 만난 정성화는 "배우는 관객의 환상을 창조해야 한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역할 도전은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웃었다.

한국에서 스테디셀러 대접을 받는 '레베카'는 영국 소설가 겸 극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기반으로 했다. 스릴러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이 영화로 만들어 유명해한 소설이다.

아내 '레베카'의 의문의 사고사 이후 그녀의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사는 남자 '막심'과 그런 막심을 사랑해 새 아내가 된 윈터 부인인 '나', 나를 쫓아내려는 집사 '댄버스 부인' 등이 막심의 저택 '맨덜리'에서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를 긴장감 넘치게 그린다.

"'막심은 이래야 한다'는 선입관을 뛰어넘고자 해요. 무대 위에서 댄디한 역을 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이번 역도 도전이었죠. 막심의 감정이 확 변하는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존 귀족 중년 남성의 모습에 대한 편견을 깨고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죠."

그가 막심 역에 캐스팅되자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독립군, 게이, 드래그 퀸 등 정성화가 맡아온 역할의 스펙트럼은 사실 넓다. 매번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관객 기대도 그가 무슨 역을 맡든 크다.

정성화도 최근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관객들의 기대감을 채워줘야겠다는 생각 자체에 얽매이기보다 거기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좋은 발걸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의외의 역할에 도전하는 것이 즐거워요. 초반에는 물론 스트레스를 받지만 저 저 역시 성장하게 됐죠."

'레베카'를 통해 그는 가창 부분도 성장했다. 이미 '레 미제라블' 등 어려운 넘버의 뮤지컬로 검증된 배우이지만, 드럼 같은 리듬 악기가 아닌 현악기로 리듬을 맞춰야 하는 '레베카'의 넘버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감정이 중간에 바뀌어서 노래가 못 따라오는 경우도 생길 수 있어요. 발성을 하나로 고정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했죠."

정성화는 '딸바보'로도 알려졌다. 굵직한 작품 목록을 채워온 그는 최근 딸과 함께 뮤지컬 '번개맨'을 재미있게 보고 왔다고 털어놓은 뒤, "아이를 위해서 탈을 쓰는 작품에도 출연하고 싶다"면서 웃었다.

동시에 자신이 아끼는 캐릭터와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가고 싶다고도 했다.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맨오브라만차'의 돈키호테, '라카지'의 '앨비'처럼 말이다. 그가 아직 맡지 않은 역 중에는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다섯 딸을 둔 가장 '테비에'가 그런 캐릭터다. 평소 "캐릭터에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는 숭고한 작업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마음먹어온 그답다.

뮤지컬배우의 새 계보를 써온 '정성화'를 롤모델로 여기는 후배들에게 그는 이렇게 주문한다.

"증명이 계속되다 보면 선택 폭이 넓어지는 순간이 와요. 자기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위해 실력을 쌓아야죠."

realpaper7@newsis.com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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