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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위기는 87년 체재 산물'...전문가들 '숲'을 봐야

입력 2020.10.01. 09:00 댓글 0개
노동비용 총액, 87년 체제 출범 이후 4년 만에 2.2배 상승
한국경제, 자영업 등 열악한 부문 일자리 흡수능력 떨어져
"코로나 위기속 숫자 해독·수요 예측 등 능력 키워야" 조언도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중인 8일 서울 명동의 가게들이 폐업한 상태로 방치돼 있다. 2020.09.08.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자영업자들이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고 존망의 갈림길에 서면서 자영업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찾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속에 삼성경제연구소 출신의 이코노미스트나, 전직 중견기업 연구원장 등 이른바 주류 출신의 전문가들도 속속 이 대열에 합류해 관심을 끈다.

자영업 연구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대표적 주자가 삼성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권순우 자영업연구원장이다. 권 원장은 이 연구소의 거시경제실장, 경제정책실장, 금융산업 실장 등을 지낸 경제전문가다.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경고한 보고서 ’외환위기의 증후와 처방‘으로 이름을 알렸다. SERI경제전망을 대표집필했고, 한국은행 통화정책 자문위원을 거쳤다.

자영업 관련 분야에서 드문 이력의 소유자인 권 원장은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접근을 취한다. 그는 자영업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1987년 원죄론‘을 제기한다. 이른바 87년 체제 책임론이다. 야당과 시민사회 단체, 학원 세력 등이 당시 전두환 군부독재에 대항해 직선제 개헌을 얻어낸 이후 노동조합이 빠르게 세를 불리며 급증한 임금 비용이 현 자영업 과잉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기업의 노동비용 총액 지표는 권 원장의 이러한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노동비용 총액은 87년 체제 출범 이후 불과 4년 만인 1991년 2.2배 상승했다. 그 후폭풍은 컸다. 임금 비용이 치솟자 경영자들은 자본 투입을 늘리고, 고용을 억제하며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을 주도했다. 이에 따라 자영업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부문 일자리를 흡수할 여력도 점차 감소했다는 것이다. 노동비용 총액은 ▲현금 급여를 비롯한 근로자 1인당 직접노동비용 ▲퇴직금·복리비 등 현금 급여 이외의 비용을 모두 더한 것이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가 24일 오후 대구 동구 신천동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앞에서 '2020 대구지역 노동자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구에서 처음 열린 대규모 집회로 3000여명이 참석했다. 2020.06.24.lmy@newsis.com

고용없는 성장은 기업 규모별 종사자 비중에서 확인된다. 우리나라는 250인 이상 대형기업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비중(2015년 기준)이 불과 15.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9.1%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 비중은 2017년에는 12.8%로 더 하락한다. 반면 이들 대형기업의 생산성은 OECD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대형 기업들이 채용은 가급적 줄이되 자본은 늘려 생산성을 높였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기준 로봇을 가장 많이 도입한 국가 1위가 중국(8만7000대), 2위는 한국(4만대)이다.

권 원장이 제시하는 자영업 해법은 잘못 채운 첫단추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경제 시스템 내 노동이 제대로 순환하지 않아 울혈이 생겼으니, 침(노동시장 유연화)을 놓아 꽉 막힌 혈류를 다시 돌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아울러 ▲창업주 세대에서 3·4세로 경영권이 옮겨가며 역동성을 잃고 있는 재벌지배구조 개혁 ▲사업·정치·지식 등 자영업 3각 협력체계 구축 등을 위기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중견기업연구원장, 파이터치연구원장을 지낸 김승일 IBS컨설팅그룹 전 대표도 유사한 진단을 내놨다. 근로자 250인 이상 대형기업의 임금수준이 높다보니 고용을 제약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GDP대비 한국 대기업의 임금수준을 미국 수준으로 낮춘다면 고용인원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영업으로 흘러드는 인력을 흡수할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다.

【서울=뉴시스】1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계열회사 내부거래 금액은 총 198조6000억원, 매출액 대비 비중은 12.2%로 전년 대비 각각 7조2000억원, 0.3%포인트씩 늘어났다. 규제 사각지대 회사 333곳의 내부거래 금액은 규제 대상회사들에 비해 약 3배나 큰 것으로도 나타났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

김 전 대표는 아울러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세계 최고"라며 "하지만 자유롭게 진입해 활동할 많은 영역에 진입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계열사 내부거래, 공공 부문 시장 사업자만의 영역이 많다"며 "이러한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자영업자 등 다수가 생존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계열이 내수시장에도 뿌리를 내려 공정한 경쟁을 펼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외식업 등 자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좀 더 구체적이다. 이들은 인구 구조 등 자영업 위기의 구조적 요인을 주시하면서도 ’자강론‘에 방점을 둔다. 자영업자들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최저임금 쇼크로 흔들리는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사장 노동자‘라는 신조어를 처음 사용한 김태경 건국대 식품유통 경제학과 겸임교수가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자영업자들이 코로나 위기속 ’숫자를 해독하고 수요를 예측하는 능력‘, '인력 운용 노하우' 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영업 위기 진단·해법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리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 분야를 쇄신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학만 상품경제연구소장은 "자영업 문제는 표에 민감한 정치권에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와 같다"며 "(하지만) 이번에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하는 등 메스를 대고 디지털 뉴딜을 통해 변화의 물꼬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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