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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and]팬데믹 시대의 외교 풍경···'비대면 랜선' vs '그래도 현지로'

입력 2020.09.20. 06:00 댓글 0개
유엔 총회, 코로나19로 사상 첫 온라인 개최
3월 후 국제회의 취소·연기, 화상회의로 대체
우리도 재외공관장 186명 화상으로 한 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출장길에 나서기도
통화·화상회의만으로 해결 어려운 중요 현안
강경화, 독일서 'G7회의 韓참여 환영' 이끌어
김건 차관보, UAE 출장 후 신속통로 제도화
위험 감수한 만큼 양국 협력 공고화 장점
[서울=뉴시스]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외교부에서 전(全)재외공관장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2020.07.10.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국현 기자 = 아날로그적 만남을 중요시했던 외교 현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이 6개월째 이어지면서다. 세계 각국은 국경을 걸어 잠그고, 하늘길을 막았다. 더 이상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외교관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랜선을 이용한 비대면 외교에 나섰다.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유엔 총회가 상징적이다. 유엔총회가 열리는 매년 9월이 되면 뉴욕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정상과 외교장관, 수행원들로 붐볐다. '외교 올림픽' '외교 슈퍼볼'로 불리는 유엔총회 기간 정상들은 수백 개의 부대 행사와 다양한 양자, 다자 회담을 진행하며 활발한 외교전을 벌여왔다.

하지만 오는 22일부터 8일간 열리는 제75회 유엔 총회는 각국 수장들의 사전 녹화 영상으로 진행된다. 회원국들은 총회가 열리기 5일 전까지 15분 길이의 영상을 유엔에 보내고, 영상은 공지된 순서에 따라 총회장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유엔 총회장도 문을 열지만 100여명으로 제한하고, 국가별로 1~2명의 대표자만 마스크를 쓰고 입장토록 했다.

대부분 정상들은 일찌감치 유엔총회 참석을 접었다. 주유엔 미국대표부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지정 여행경보 2∼3단계 국가들의 모든 대표단에게 "의무적으로 1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한다"고 통지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엔 대표부 대사들만 일부 참석해 총회를 진행하는 하이브리드 회의가 될 전망이다.

올해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Pandemic·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을 선언한 후 대부분 국제회의가 취소되거나 화상회의로 대체됐다. 지난 주 열린 한·아세안,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4개 회의도 모두 화상회의로 열렸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6월에서 9월로 미뤄졌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소식이 없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김건 외교부 차관보가 지난 14일(현지시각)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외교장관을 예방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모하메드 왕세제 앞 친서를 전달한 후 환담을 하고 있다. 김건 차관보는 UAE 외교장관 이외에도 정무차관보 등 정부 관계자들을 잇따라 예방하고 한-UAE 신속입국(Fast Track) 제도, 코로나19 관련 UAE내 우리 국민 보호, 양. 국 수교 40주년 기념 양국 관계 발전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2020.06.15. (사진=외교부 제공) photo@newsis.com

국내로 시선을 돌리면 지난 7월 재외공관장회의를 화상으로 진행한 것도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통상 3월이 되면 세계 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공관장들로 광화문 정부청사 강당이 꽉 찰 정도였지만 올해는 186명의 모든 재외공관장이 화상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화상회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코로나19 이전까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출장길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외교 현안이지만 통화와 화상회의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코로나19 확산 후 지난 8월 독일에 다녀왔다. 제2차 한-독 외교장관 전략대화를 위한 방문이었지만 목적은 따로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확대정상회의에 한국 참여를 요청한 상황에서 독일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독일 방문에서 한국의 참여를 환영한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코로나19 확산 후 첫 대면외교에 나섰던 김건 외교부 차관보의 UAE 출장도 주목할 만하다. UAE에는 한국 기업이 130여개가 진출해 있지만 코로나19로 필수 인력의 입국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물론 현장에서 공사 기한 문제 등 애로사항이 쏟아졌다. 김 차관보는 UAE로 넘어가 기업인 입국 허가 및 격리 면제를 부여하는 '신속입국제도' 합의를 이끌어냈다.

[인천공항=뉴시스] 박미소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팜 빙 밍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장관 초청으로 베트남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2020.09.17.misocamera@newsis.com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는 상황에서 대면 외교에 나서는 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다.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최소한의 수행 인력만 대동해야 하며,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쓴 채 회담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위험을 감수한 만큼 양국 관계 진전은 물론 협력 차원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대면 외교가 재개되고 있다.

예컨대 압둘러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외교장관의 한국 방문으로 이어지면서 한국과 UAE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하는 상징적인 계기가 됐다. 압둘라 외교장관은 7월 초 270여명이 탈 수 있는 전용기에 13명을 태우고 한국을 찾아 서울 시내 호텔 2개층을 통채로 빌려 머물고, 식사도 룸서비스로 해결했다. 강 장관과 100분 가량의 회담을 마친 후에는 바로 돌아갔다. 한국 방문 전후 14일씩, 무려 한 달의 격리를 감수하면서 출장길을 감행했다는 후문이다.

다양한 국가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외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대면 접촉을 통한 설득과 조율이 최고의 무기처럼 보인다. 국가 기밀을 다루거나 고도의 협상 전략이 필요한 현안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은 채 상대방의 전략과 전술을 탐색하고, 협상을 통해 국익을 최대화해야 하는 미션은 아날로그적인 접근만이 유효해 보인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팜 빙 밍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장관과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2020.09.19. photo@newsis.com

하지만 비대면 외교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종전에도 전화 통화나 화상회의 시도가 있었지만 보안 문제에 부닥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속사정도 있다. 외교부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해킹 우려가 없는 자체 국제영상회의 시스템과 재외공관 화상교육시스템을 도입해 비대면 외교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통상적인 현안을 놓고 각국의 입장을 공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회의나 세미나라면 구태여 비행기를 탈 필요 없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대면 외교는 진화를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경화 장관은 지난 8일 루마니아 재외공관장 화상회의 특별세션에 참석해 코로나 이후 비대면외교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당분간 비대면외교 및 전통적인 대면외교의 장점을 모두 취하는 혼재된 외교 방식이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비대면외교가 대면외교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라도 국가 간 최소한의 필수적인 인적 교류가 지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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