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국가의 기본적 임무 공권력이 배반한 사건”

입력 2017.09.19. 17:13 수정 2017.09.19. 17:18 댓글 1개
이낙연 총리, 백남기 농민 1주기…정부 대표해 사과
검찰 후일 교훈 남기고, 경찰 진정한 반성 증명해라
총리 부인은 공관 입주 첫 행보로 유족들 초청 위로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 숨진 백남기 농민 1주기를 맞는데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19일 정부를 대표해 사과한 뒤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이 총리는 엄정한 사법절차를 밟아 불법을 응징, 진정한 반성과 확실한 재발방지 등 후일의 교훈으로 남길 것도 지시했다.

사실상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 수장으로서 과거 정부의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만큼 새 정부에서 법적 책임자 처벌 및 진상규명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총리 부인 김숙희 여사도 총리공관에 입주한 후 첫 행보로 고 백남기씨의 유족을 공관으로 초대해 정성이 담긴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하며 위로한 것으로 알려져 총리 내외가 평소 공권력 남용으로 국민이 희생된 가슴 아픈 일에 마음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이날 정부 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고 백남기 농민 1주기와 관련, “정부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저는 정부를 대표해 백남기 농민과 그 가족, 국민 여러분께 정부의 과오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오는 25일은 고 백남기 농민께서 고단하지만 깨끗했던 삶을 가장 안타깝게 마감하신 지 1주기가 되는 날”이라며 “백남기 농민은 쌀값 폭락 등 생활을 위협하는 농업과 농정의 왜곡에 항의하는 수많은 농민의 시위에 앞장서 참여하셨다가 공권력의 난폭한 사용으로 목숨을 잃으셨다”고 말했다.

이어 “백남기 농민의 사망은 국민의 생명과 생활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기본적 임무를 공권력이 배반한 사건”이라며 “공권력의 그릇된 사용은 백남기 농민께만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정부는 지난날의 이러한 잘못들을 처절히 반성하고, 다시는 이러한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공권력의 사용에 관한 제도와 문화를 쇄신하겠다”며 “검찰은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엄정한 사법절차를 밟아 불법을 응징함으로써 후일의 교훈으로 남겨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이어 “경찰은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전말을 자체 조사해 가감 없는 백서로 남기는 등 진정한 반성과 확실한 재발방지 의지를 증명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 총리는 “정부의 모든 부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의 가치라는 확고한 철학을 모든 행정에 구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문은 이 총리가 직접 작성했다.

이 총리는 앞서 전남지사 시절 공권력 남용으로 희생당한 고 백남기씨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고 백남기씨 빈소를 조문하고 광화문 영결식과 광주 노제에 참석하는 등 줄곧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해 왔다.

이 총리 부인 김숙희 여사는 지난 6월 20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입주 후 첫 공식행보로 백남기씨의 부인 박경숙씨와 장녀 백도라지씨 등 유족을 총리공관으로 초대해 “580여일이 지났는데 그동안 얼마나 괴로우셨을 지 말로 다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으니 희망을 갖고 지켜보자”며 위로했다.

김 여사는 “최근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고통이 크다는 걸 안다”며 “직접 얘기라도 들어 드리면 좀 풀리시지 않을까 해서 모셨다”고 초대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직접 장을 본 후 손수 장만한 밥 한끼를 대접하며 또 한번 위로를 건냈다. ‘막걸리’를 주제로, 이 총리의 막걸리 사랑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박씨는 고인도 막걸리를 좋아했다며 추억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정부를 대표해 사과한 것과 관련, 장녀 백씨는 “총리님이 정부를 대표해 사과해 주신 것은 감사”하다면서도 “저희가 요구하는 것은 사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 세 가지인데 이제 하나가 된 것이다. 나머지도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남기 투쟁본부도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지고 676일이 지난 오늘에야 정부의 사과가 이뤄졌다”며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듣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제라도 과오를 바로잡기 위한 의지를 밝힌 것에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고 백남기씨는 2015년 11월 14일 서울 광화문 민중총궐기 집회 때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맸다. 쓰러진 지 317일 되는 2016년 9월 25일 결국 숨을 거뒀다.

류성훈기자 ytt7788@daum.net

# 이건어때요?
댓글1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