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다시 세운 세운상가, 뭘 세우나?

입력 2017.09.18. 16:16 댓글 0개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1960년대 문을 연 한국 최초 주상복합건물로 1970~80년대 전자·전기산업 발전을 이끌었던 세운상가가 대규모 공사를 통해 새 단장되고 있다. 침체의 늪에 빠졌던 세운상가가 부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14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는 '다시·세운 프로젝트' 1단계 공사 막바지 작업으로 분주했다. 공사 작업자들과 차량이 쉴 새없이 드나들었고 철근을 자르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다시·세운 프로젝트는 1600개 업체가 입주하고 있는 세운상가 일대 총 44만㎡를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전략적 거점으로 거듭나게 하는 도시재생사업이다.

최근 마포의 '문화비축기지', 돈의문 박물관마을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 중구의 '서울로 7017', 성동구의 '새활용플라자', 노원 전구간 공원화 등 '서울에 잘생긴 20곳'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 중의 1곳이 다시·세운이다.

이를 통해 세운상가에서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신성상가를 거쳐 진양상가에 이르는 1㎞, 즉 종로에서 퇴계로에 이르는 공간을 재정비하고 보행로로 연결하게 된다. 올해는 세운상가에서 대림상가까지 공사가 완료되고 나머지구역은 2019년말까지 연결될 예정이다.

오는 19일 1단계 개장을 앞둔 세운상가는 종묘의 맞은편에 위치한다. 다시세운광장이라 이름 붙여진 널찍한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세운상가'라는 대형 문구와 함께 '메이커시티 세운(Makercity Sewoon)'이란 문구가 시야에 들어온다.

'메이커시티'란 제작·생산·판매·주거·상업·문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장소를 의미한다. 실제로 세운상가에는 각종 전자제품 상점이 있고 5층부터 7층까지는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 최초 주상복합 건물인 세운상가는 메이커시티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인 셈이다.

다시세운광장을 지나다 마주친 행인들과 주변상인들은 하나같이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공사현장을 바라봤다.

상인 김종식(65)씨는 "그동안 상가 분위기가 완전히 바닥이었다. 매출이 평소의 10분의 1, 20분의 1까지 떨어졌다"며 "19일 다시세운 프로젝트로 새로 개장을 하면 사람이 많이 오고 장사도 잘 될 것 같다. 상가에는 원래 사람이 많이 다녀야 한다. 이 공사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말처럼 한때 '잘 나갔던' 세운상가는 길고 긴 침체기를 겪고 있다. 상가 1층에 새로 조성된 '다시세운광장 유적 전시실'에는 조선시대 집터는 물론 생활용품, 도기, 제기 등이 전시돼 세운상가의 역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세운상가일대는 예로부터 인구가 밀집한 곳이었으며 주거지와 상업지역이 혼재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판자촌이 들어섰고 1960년대 후반 판자촌이 철거된 후 상가가 조성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상가는 '세운상가 1바퀴를 돌면 탱크, 잠수함, 로켓, 인공위성까지도 만들 수 있다'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이날 직접 둘러본 세운상가는 옛 명성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상인들은 무전기와 감시카메라, 음향기기, 녹음기, 휴대전화, 난방기, 도청탐지기, 특수고무금형 등 각종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손님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침체라는 말이 저절로 오버랩됐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서울시가 주도한 다시세운 프로젝트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송달석 세운상가 가동 아파트 주민회장은 "박원순시장이 2~3년간 의견수렴을 충분히 했고 구체적인 약속을 했는데 약속 이행률이 130~150%정도 된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송 회장은 "입주한 상가중 70%가 문닫을 정도로 힘들었고 슬럼화하는 과정이었는데 서울시가 이 사업을 하면서 다시 아파트 매매가가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창업자들이 세운상가의 문을 두드리는 횟수가 늘면서 다시 활기를 띄고 있다.

젊은 창업희망자들은 부품과 재료가 다양하고 실험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운상가가 스타트업 기업에 안성마춤이라고 입을 모은다.

송 회장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엘리베이터가 하루 종일 멈추지 않을 정도다. 서울시가 인공지능과 로봇, 드론 등 4차산업 관련업체를 모집했는데 10분만에 마감됐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전자와 전기 등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이 세운상가로 온다면 그동안 세운상가 상인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와 젊은이들의 신지식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즉, 창업과 청년에 필요한 재료와 기술이 있는 세운상가가 창작자와 스타업을 연결해 창조제조산업의 혁신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상원 세운상가시장협의회 사무국장은 "새로 개장을 한다는데 기대반 우려반"이라며 "처음 반짝하고 말까봐 그렇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상가가 잘 돼서 장사하는 분들이 모두 다 잘되면 좋겠다"면서도 "앞날은 알 수 없으니 지나봐야 알겠지. 다시세운 프로젝트가 효과를 발휘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고 덧붙였다.

기대와 우려가 섞인 심정으로 19일 개장을 기다리는 상인들을 뒤로 한 채 상가 옥상으로 향했다. 아직 공사가 한창인 옥상에 올라서자 북쪽으로는 북한산과 북악산, 종묘가 한눈에 들어왔다. 남쪽으로는 서울타워가 보이는 등 사방이 탁 트여 관광객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실제로 이날 세운상가에서는 많은 젊은이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세운상가 내부 구조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쌍의 남녀는 사진 촬영에 한창이었다. 진지하게 포즈를 취하고 사진기를 다루는 모습에서 프로의 향기가 느껴졌다.

사진기를 다루는 심미진(29)씨는 "빈티지하고 특이한 구조라 오게 됐다"며 "분위기가 묘하다. 스튜디오에서도 이런 느낌을 연출하기는 어렵다. 다채로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모델 역할인 김혜웅(24)씨는 "평소 보지 못한 구조라 신기했다"며 "이국적인 느낌이라 촬영을 하기에도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촬영에 다시 몰두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발길을 옮기자 청년 창업자들을 위한 공간인 메이커스큐브를 비롯해 창의허브를 운영하는 씨즈, 서울시립대 시티캠퍼스 등이 눈에 띄었다.

세운상가 남측과 청계상가를 연결하는 다시세운교는 서울시의 또다른 명소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청계천 위를 가로지르고 있어 다리 위에서 청계천을 내려다보면 경치가 그만이었다. 하염없이 함께 걷고 싶은 연인들은 세운상가에서 청계상가, 대림상가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분위기를 잡을 수도 있다.

서울 세운상가 총괄 코디네이터를 맡은 강원재 OO은대학연구소 제1소장은 "상가를 새롭게 재생하고자 했던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힘을 합한 이번 프로젝트가 19일 개장을 앞두고 있다"며 "밀어붙이기식으로 부수고 새로 짓는 시대에서 벗어나 세운상가가 새로운 재생의 사례가 되길 바란다. 50주년을 맞은 세운상가가 활성화되는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daero@newsis.com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