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전라도 정명(定名) 천년

입력 2017.09.18. 09:46 수정 2017.09.19. 08:23 댓글 0개
김종석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대표이사

나주사람들 생각으로 내년은 ‘전라도 정명 천년’이 되는 해다. 그들은 정명(定名)과 정도(定道)를 구분한다. 일천 년 전 명명된 전라도(全羅道)는 전주(全州)의 ‘전(全)’자와 나주(羅州)의 ‘나(羅)’자를 합쳐 만들어졌음을 누구나 다 안다. 나주시는 지역을 의미하는 ‘나’자가 들어갔다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전라도 정명 천년’을 공식 명칭으로 표기하고 있다. 반면 전남도는 행정단위의 ‘도(道)’를 의미하는 뜻에서 ‘전라도 정도 천년’을 사용했다. 하지만 현재 최고 행정구획의 성격이 분명하지 않아 단순히 ‘전라도 천년’을 사용할 예정이다. ‘전라도 정명 천년’은 나주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과 시민 자긍심 고취를 통해 ‘목사골 르네상스’를 이루고자 하는 다짐이다.

목사골은 고려시대 지방행정단위인 ‘목(牧)의 고을’에서 유래한다. 983년 고려 성종 때 중앙집권 정책으로 지방의 중요거점지역 12목을 설치했다. 고려 초기에는 전라북도 지역을 강남도(江南道), 전라남도 지역을 해양도(海陽道)라 했는데, 1018년 현종 9년에 둘을 합해 전라도가 됐다. 나주목은 1895년 나주 관찰부가 설치될 때까지 무려 1000여 년간 유지 되었다. 영산강이 만들어낸 기름진 농토를 배경으로 풍요로운 문화를 꽃피웠던 나주목은 나주읍성, 금성관, 동헌, 향교 등 당시의 흔적들이 그 영광을 대변하고 있다.

나주목은 전주와 함께 과거 천년 동안 역사.행정.문화.교통 등 모든 분야에서 남쪽지역의 중심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천년은 농업생산성에 기반을 둔 시대였다. 영산강을 중심으로 한 풍부한 농토는 경제적 토대였고, 영산강을 낀 영산포구 등은 해상 교역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나주는 일제강점기와 농업사회에서 중공업사회로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최근 100년 동안 광주와 목포 등 신흥도시에 그 영예를 넘겨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빛가람혁시도시가 나주에 들어서면서 나주시는 새로운 도약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나주시가 내년 10월 18일 ‘전라도 정명(定名) 천년’을 앞두고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물론 광역행정단위인 광주시, 전남도, 전북도와는 별개의 자체사업이다. 정명 천년을 앞두고 각계각층 시민, 출향 향우 등이 함께 선제적으로 기념사업을 준비 중이다. 최근 ‘전라도 정명 천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강인규 나주시장과 이건철 전 전남발전연구원장을 공동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각종 행사가 마련된다. 나주시는 인구 15만, 예산 1조원 시대를 앞두고 있다. 새로운 천년을 향한 나주 르네상스의 꿈이 이뤄질지는 순전히 나주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김종석 논설실장 bellstonk@hanmail.net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