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서경천도론

입력 2020.08.03. 10:25 수정 2020.08.03. 18:57 댓글 0개
박지경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편집국장

묘청은 고려 인종 때 서경(지금의 평양) 출신 승려다. 그는 당시 문인이었던 정지상의 추천으로 조정에 등용됐다.

당시 '이자겸의 난'으로 궁궐이 소실되고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정치는 이자겸의 몰락 이후 김부식으로 대표되는 경주 김씨 등 문벌귀족에 의해 주도됐다. 밖으로는 금나라 압력이 거세지고 있었다.

이때 묘청은 '서경 천도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신진관료들과 함께 인종에게 '고려를 황제국이라 칭하고 독자 연호를 사용하며, 금을 정벌할 것'을 건의하며 이의 실현을 위해 서경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주장했다.

이같은 개혁적 주장은 개경 문벌귀족의 반발을 불렀고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이에 묘청 등은 서경에서 반란(1135년)을 일으켰다. 이들은 왕이 서경으로 천도하면 고려에 재통합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거부되고 1년여 만에 김부식이 이끄는 정부군에 진압됐다.

승자의 기록인 고려 정사(正史)에서는 묘청을 기괴한 승려이자 반란 수괴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는 묘청의 난에 대해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이라며 다음과 같이 썼다.

"고려에서 이조에 이르는 1천년 사이에 이 사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없을 것이다. 사가들이 왕의 군대가 반란의 무리를 친 싸움 정도로 알았으나 이는 근시안적 관찰이다. 실상은 낭·불가 대 유가, 국풍파 대 한학파, 독립당 대 사대당,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곧 후자의 대표였다. 이 전투에서 김부식이 승리해 조선역사가 사대·보수·속박적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다. 반대로 묘청이 승리했다면 독립·진취적 방면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요즘 정치권이 '행정수도 이전(완성)론'으로 시끄럽다. 집권 개혁세력의 주장이어서 묘청 때와 다른 상황이다. 하지만 역시 보수세력은 극렬히 저항할 조짐이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이 가져온 폐해를 안다면 반대해선 안 된다. 지방의 몰락은 결국 국가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경쟁력을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을 완수해야 한다. 단, 또다른 서울이 되지않도록 다른 지방의 경쟁력을 동시에 갖추도록 하는 보완책이 나와야 한다. 박지경정치부장jkpark@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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