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묵시적 동의' 둔 엇갈린 성범죄 판결 "왜?"

입력 2020.08.03. 10:51 수정 2020.08.03. 10:51 댓글 0개
무단촬영 두고 “촬영사실 알았을 것” 무죄
강제추행 두고 “상대 수치심 확인돼” 유죄
광주지방법원 전경. (사진 = 뉴시스 DB)

성범죄 판결 속 피해자의 '묵시적 동의'를 둔 재판부의 엇갈린 판단이 이어지면서 '성인지 감수성'을 둔 법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범죄 사건 속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지만, 다양한 사건 속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여의치 않은 상황이 잇따르면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형사3단독 김승휘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용)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8년, 사귀던 여성이 호텔 욕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동의없이 찍었다는 이유다.

A씨는 ▲연인 사이인 점 ▲촬영한 사진을 상대방이 확인했고 삭제를 요구하지 않은 점을 들면서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상대방은 해당 촬영에 대해 "묵시적 동의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진술을 펼쳤다.

두 의견을 종합한 재판부는 A씨의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의 촬영 사진은 가까이 접근해 찍은 사진이다. 각도와 거리 등을 고려했을 경우 촬영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후 여성이 삭제를 요구한 정황이 보이지 않았으며, 사진의 존재를 알고 나서 5개월 지난 시점에 고소가 이뤄졌다. 촬영을 묵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는 여성의 진술을 뒷받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묵시적 동의'를 둔 다른 판결도 이어졌다.

같은 재판부는 지난달 초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넘겨진 B씨에 대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B씨는 지난해 10월 피해 여성과 드라이브를 하던 중 허벅지를 만진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됐었다.

재판 당시 B씨도 상대방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연인관계로 발전했으며 당시 이뤄진 스킨십이 늘상 이뤄지던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에 대해 "피해 여성의 묵시적 동의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주 2~3회 만나던 사이 성관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원해서 이뤄진 게 아니었고, 이 때를 제외하면 연인 사이에서 이뤄질 만한 스킨십이 없었던 점에서다. 또 문제의 사건 전에 여성이 강제적으로 이뤄진 성적 행위를 항의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점 등을 반영했다.

또한 재판부는 B씨의 "연인 사이의 예상 가능한 스킨십으로 추행이 아니다"는 주장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밤 11시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이뤄진 만큼 피해자가 압박과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며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평소 관계와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보충해 맥락을 더 살펴 내린 판결이다"고 설명했다. 이영주기자 lyj2578@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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