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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침표인 듯 쉼표를 찍으며 ;
입력 2020.07.27. 14:19 수정 2020.07.27. 20:34 댓글 0개20일이다.
날짜를 세어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한 달도 만나지 못했다니….
온라인 개학(중학교 1학년 기준 4월 16일)을 시작하고, 코로나 19로 축소된 수업일수 75일 중(7월말까지) 20일만 얼굴을 맞대고 수업을 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니 등교했어도 제대로 된 소통과 수업은 정말 멀기만 했던 것 같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가 북구에 위치해 있어서 광주에 코로나 19 상황이 심각해 있을 무렵, 간신히 이어가던 등교수업도 전 학년 등교 중지 상태가 2주 연속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다시 시작된 등교수업도 1/3로 줄이고, 지필 평가가 시급한 2, 3학년보다 1학년 등교는 현저하게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7월 말까지 겨우 20일 등교하게 된 것이다. 수업보다는 방역, 안전이 우선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솔직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학생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교육과정과 평가의 공백을 어떻게 하면 온라인 수업으로 메울 수 있을 것인가였다. 등교수업만큼은 못 하지만 학습 내용을 최대한 전달하고, 학생들의 응답을 전달받고, 다시 피드백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려 노력했다.
그리고 광주가 그동안 겪지 않았던 코로나 19 감염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조금이라도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주변에 끼칠 영향과 업무와 수업의 걱정으로 잠 못 이루기도 했다. 한 달 이상 길어진 장마는 몸과 마음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두통거리였다.
그럼에도 학교 시계는 온라인에서도 꾸준히 흘러가고, 벌써 여름방학이라는 것을 맞이하게 되었다. 예년 같으면 정신없이 흘러간 학사일정과 숨이 막히는 더위 속에서 방학이라는 단비는 학생, 교사 모두를 설레게 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줄어든 학사일정에 방학 일정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1/3 등교로 인해 두 개 학년은 온라인 방학식을 진행해야 한다. 모든 것이 새로울 수밖에 없는 2020년이다.
갑작스러운 이야기 같지만, 여름방학을 앞두고 문장 부호 하나를 떠올렸다. 바로 '세미콜론(;)', 우리말로 번역하면 '쌍반점'. 마침표인 듯 쉼표인 모양은 말 그대로 코로나 19 상황을 종료하고 싶지만, 결국 다시 이어나가야 하는 형상 그대로인. 또는 7개월의 상황을 어느 정도 마치고, 다시 한 호흡 에너지를 비축하고 2차 팬데믹을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
"세미콜론은 '한글 맞춤법'의 문장 부호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은 문장 부호로 규정을 따르자면 국어에는 나타날 수 없는 부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세미콜론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쌍반점이라고 번역되어 쓰고 있는 세미콜론은 일종의 큰 쉼표로, 쉼표보다는 강하고 마침표보다는 약한 기능을 한다. (중략)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있던 쌍반점이 1988년 고시된 '한글 맞춤법'에서 사라진 것은 이 부호의 쓸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문장부호의 이해 '세미콜론' (국립국어연구원 양명희)
세미콜론은 쉽게 말해 저자가 글을 쓸 때 문장을 끝낼 수도 있지만 끝내지 않기로 선택할 때 쓰는 문장 부호다. 물론 위의 인용처럼 우리나라 문법에는 없는 문장 부호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때나 자살 예방 운동 등 다수의 삶의 영역에서 쓰이는 일종의 보편적 상징처럼 널리 쓰이고 있다.
어쩌면 2020년을 살아가는 학생이나 교사들에게 여름방학은 세미콜론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보낸 7개월을 정리하고, 한 호흡 쉬어가는 쉼표 같은. 그렇게 2020년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만난 20일,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온라인의 만남 55일을 기억하며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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