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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기슭에서 일군 매출 120억대 파프리카왕국...제이앤제이팜 김현복 회장

입력 2017.09.14. 15:55 댓글 0개

【뉴시스=박진용기자]

“천관산의 정기를 받은 덕분이지요. 지난 20여년간 큰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지역사회에 보답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IC를 거쳐 1시간쯤 달렸을까. 전남 강진군과 보성군 사이에 자리한 장흥군으로 들어서 10여분쯤 더 가니 우뚝한 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호남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천관산(해발 723미터)이다. 산세가 가파르고 하늘을 찌를 듯 봉우리 마다 바위가 솟아있는 게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이 곳 천관산 한쪽 기슭(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 자리한, 1.7㏊(헥타르·5000여평) 규모의 유리온실에는 형형색색의 파프리카가 1년 내내 수확되고 있다. 온실 입구에 들어서니 ‘한국농업의 세계화’라는 큰 글귀가 기자를 반긴다.

제이엔제이 팜 대표이사 김현복(54)회장이 파프리카 왕국의 첫 씨앗을 뿌린 농장이다. 김 회장은 인근 동양 최대 규모의 유리 온실(장평면 청룡리 1만2000평)를 비롯해 3만평 규모의 4곳 농장에서 연간 3000톤의 파프리카를 생산, 12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발견한 채소의 '보배'

김 회장이 고향 인근 천관산에 터를 잡고 파프리카 농사에 뛰어든 건 1995년. 지인들과 일본 여행을 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오사카에 갔는데 가게에서 노랗고 빨갛게 생긴, 처음 보는 걸 파는 거예요. ‘이게 무슨 색색이 플라스틱이냐’ 하고 손으로 잡아 봤더니 채소라는 겁니다. 깜짝 놀랐죠."

그는 무릎을 쳤다. 작물을 이걸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네덜란드로 날아가 재배법을 익혔다.

물론 쉽지 않았다.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현지 농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귀동냥 눈동냥을 거듭했다. 유리 온실 건립 등으로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고, 날씨 변화에 민감해 아무나 기를 수 없는 작물이었다.

하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매력 있고, 고향에서 재배하면 더욱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무엇보다 고온성 작물이라 일조량이 풍부한 장흥의 기후여건과도 딱 맞았다. 파프리카 소비대국 일본과 가까우니 품질만 확실하다면 판로도 크게 걱정할 게 없었다.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졌다. 1980년대부터 관상용 춘란 재배를 통해 모은 재산(당시 38억)을 쏟아 부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그 돈으로 도시에서 편하게 살지 뭐하러 '듣보잡' 작물을 재배해 생고생을 하려고 하느냐"며 다들 미쳤다고 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1995년 최첨단 네달란드식 유리온실을 짓고 파프리카를 재배해 2년만에 200톤을 생산, 전량 일본 수출에 성공했다. 2001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시설원예 최우수단지로 선정된데 이어 농산물수출탑(50만달러)도 수상했다.

◇인생이 꽃길로만 가득하랴

하지만 곧 위기가 찾아왔다. 2000년대 초반 "파트리카가 돈 된다"는 소문이 영호남 농가에 퍼지면서 장미와 토마토를 기르던 일반 하우스 농가들이 대거 뛰어들어 공급 과잉이 발생한 것. 그러자 일본 바이어들이 담합, 생산 원가도 안되는, 평소의 5분의 1수준인 킬로당 1000원으로 가격을 후려쳤다. 국내 소비가 전혀 없던 시절이었고, 일본에서 안 받아주면 버려야 할 처지였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이번 기회에 가격으로 장난치는 일본 바이어들의 버릇을 반드시 고쳐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전국 자조회를 결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대도시별로 나눠 역할 분담을 했고, 김 회장도 직접 탑차에 제품을 싣고 서울 강남에 와 홍보행사에 들어갔다. "맛이나 보십시요"라며 무료로 나눠주는데도 처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파트 부녀회를 설득해 겨우 일주일간의 홍보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이 파프리카의 국내 소비로 이어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네덜란드산 보다 더 맛있고 가격은 절반 수준인 한국산 파프리카 공급이 끊기자 일본에서도 난리가 났다. 비온 뒤 땅이 굳듯 다시 회복된 일본 거래선은 한층 단단해졌다.

사실 파프리카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2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1994년 제주도에서 목장을 운영하던 한진그룹 계열의 제동흥산㈜이 항공기 기내식으로 공급하기 위해 재배한 게 시초다. 이후 영ㆍ호남 농업인들이 네덜란드에 가서 재배기술 등을 배워와 본격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김 회장이 바로 1세대 선구자인 셈이다.

파프리카는 시원하고 달달하면서도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그만이다. 카레나 샐러드, 볶음요리에만 주로 넣어 먹지만, 최근에는 “다이어트에도 좋고, 맛도 있어 온 가족이 과일처럼 즐기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비타민 C는 딸기의 4배, 시금치의 5배나 된다.

◇ 100% 친환경 '무농약' 파프리카, 어떻게 생산되나

제이앤제이팜에선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3가지 색상의 파프리카를 생산하는데, 과육이 두껍고 당도가 높은데다 즙도 많아 인기가 좋단다. 특히 일본에선 크기와 모양, 색깔, 맛 등에서 네덜란드산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거래선과 무농약 계약재배를 통해 수출을 하고 있기 때문에 100% 친환경 제품이다.

김 회장은 "일본 바이어들은 자기들이 지정하는 소수의 농약만 재배과정에서 쓰게하고 나중에 나온 완성 상품에는 '농약 제로' 상태를 요구하고 있고, 또 꼼꼼하게 체크한다"며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고 있어, 아예 처음부터 농약 한방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수경재배도 토양재배도 아닌 검증된 양액재배를 하니 농장환경이 늘 깨끗하고 쾌적해 병충해가 잘 안생긴다고 김 회장은 강조한다. 슬라브(나무조각을 짤게 부순 것을 담아 놓은 형태)로 일컬어지는 양액베드에 작물을 심고, 드로퍼(영양액 공급기)를 통해 채광과 온도, 습도에 따라 영영액을 자동 공급한다. 칼륨 마그네슘 등 자연상태의 흙보다 더 많은 28가지 영양분을 혼합해 해가 있는 날에는 하루 최대 11번, 흐린 날에는 한번만 준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키워도 흰가루병을 비롯해 병해충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유리온실의 경우 설치비는 비싸지만 천장이 높아 통기성이 좋고 햇빛과 이산화탄소가 풍부하게 공급되는 덕분에 온도조절을 잘 해주면 병이 거의 안 생긴다. 또 진드기 같은 건 주기적으로 천척 곤충을 투입해 잡는다고 한다.

김 회장은 "온도와 습도는 물론이고 파프리카가 좋아하는 '상대온도'까지 최첨단 자동 복합제어시스템을 갖추고 작물이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니 병충해도 거의 안생기고 평당 수확량도 일반 농가의 10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거래선은 상품이 우수해 돈 많이 벌었다며 감사의 표시로 김 회장에게 렉서스600승용차를 선물했다고 한다. 제이앤제이팜 제품의 80%는 일본에 수출되고 20%만 국내 소비된다.

◇농업도 투자이고 과학인데....정부 정책 아쉬워

그는 "농업도 투자이자 과학이다. 소비자에게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는 시대는 지났다"며 "과감한 투자와 철저한 과학 영농으로 온도 습도 채광 영양까지 모두 컴퓨터로 조절해 투여, 최우수 상품을 가장 많이 생산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지열 히팅 냉난방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파프리카 농사를 처음 지을 때 수익의 거의 70%가 기름 값으로 나가 어려움이 컸다. 겨울에는 24도, 여름에는 27도를 유지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비용이 한때 연간 50억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름을 쓰지 않고 지열을 끌어와 연료비를 15억대로 낮췄다. 시설투자비가 무려 70억원이 들어갔지만 3~4년 지나면 충분히 투자비를 뽑을 수 있단다.

그는 정부의 농정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으로 지원되는 시설 보조금 사업이 일부 부실 등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이를 은행 융자사업으로 대체했는데 아주 잘못된 결정이란 설명이다.

김 회장은 "유리온실은 대규모로 단지형태로 집중화돼 있어야 경쟁력이 있고 지열냉난방도 초기 투자비가 엄청나게 많이 든다"며 "내돈 50억을 투자하고 정부자금 50억을 빌려 100억짜리 유리온실을 지었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농민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겠냐. 그런데 이것마저 없애고 은행융자 받아서 하라면 시설투자는 더이상 어렵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못지 않게 잘 사는 농촌...돌아오는 장흥으로

그는 요즘 고향을 네덜란드 농촌 못지 않게 잘 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3년간 장흥군 번영회장을 맡으며 지역사회의 현안에 관심을 갖게 됐고, 문제점을 더 많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귀농해 이것 저것 시도해 보다가 돈만 까먹으면서 비싼 수업료를 낸 뒤 다시 도시로 떠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김 회장은 "태양광 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와 곤충농장을 결합해 농촌에서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여러 모델을 개발하면, 줄어드는 농촌이 아니라 돌아오는 농촌, 인구 4만명의 장흥이 아니라 10만명의 장흥이 될 수 있다"며 "농업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부터 발상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김 회장과 대화를 하다보니 각종 아이디어가 분수처럼 용출해 시간 가는줄 모르게 재미 있었다. 농협과 손잡고 지역 농산물을 인근 대도시에 신선하게 유통시키는 로컬푸드 운동, 지역 공단을 생산 유통뿐 아니라 가공 관광까지 아우르는 6차 농업단지로 재편하는 일 등 지역 발전 구상이 쉼없이 쏟아졌다.

"그런 구상을 다 실현하려면 이곳 군수를 하셔야 겠다"고 했더니, 크게 웃으며 "심각하게 고민중"이라고 했다. 천관산에서 시작된 그의 꿈의 여정이 어떻게 영글지 주목된다.

naizer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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