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악(惡)의 평범함·뻔뻔함, 그리고 추악함

입력 2017.09.14. 08:08 댓글 0개
김영태의 약수터 논설주간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에게서 '악(惡)의 평범함'을 실감했다. 히틀러의 충복이자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혐의로 전범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은 머리에 뿔이 달리고 얼굴이 괴이하게 생겨먹은 괴물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피에 굶주린 악귀나 냉혹한 악당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주변 어디서든 마주칠만한 평범한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살펴본 뒤 "악이란 뿔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라기 보다는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고 분석했다.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이 도출 된 기저다.

그들의 변명은 후안무치, 그 자체다

사람은 누구나 관능적 욕망과 생(生)의 충동이 일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성향(악성·惡性)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서로 쟁탈하는 싸움이 벌어지고 사회적 혼란이 유발된다. 평범함을 바닥에 깔고 순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잔혹함'과 때로 '뻔뻔함','추악함', 누추한 모습까지 보이는게 또한 악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악성이 도덕적 수양과정을 통해 순치(馴致·길들임)될 수 있다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유신독재라는 집단광기의 시대를 이어가려던 잔예(殘裔·후예)들의 악성이 그랬다. 그들은 자국 군대를 불법으로 동원해 80년 5월 광주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전쟁놀음을 벌였다. 부당한 명령을 받은 공수부대원을 비롯한 1만여명의 계엄군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어깨에는 총검을 꽂은 M16 소총을 둘러맨 채 쇠 몽둥이를 휘두르며 학살을 자행했다. 장갑차와 탱크를 몰고 들어와 M16 소총 수십만발을 난사하는가 하면 (세열)수류탄을 터 뜨렸다. 중화기로 분류되는 M60, CAL50 기관총의 총렬도 빨갛게 달아 올랐을거다. 대전차로켓탄 '66mm로우'(50발), TNT폭약(1천200kg)에 클레이모어까지 사용됐다. 일명 '코브라'라 불리는 'AH-1J'와 500-MD, UH-1등 공격용 군 헬기는 20mm벌컨포 실탄으로 지상의 시민들을 향해 공중 사격을 가했다. 인근 공군 비행장 등에서는 공대지 폭탄을 장착하고 기관포에 실탄을 가득 채운 F5-E/F 전투기에 출격 대기 명령이 내려졌다. 그로 인해 수백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숨지고 부상을 당했다.

반정부 시위에 나선 군중들을 제압하려는 어느 국가의 현장이 아니었다. 정부군과 반군간 내전이 벌어지거나 인접국 간의 국경분쟁 등 무력충돌이 발생한 전장의 한 가운데는 더 더욱 아니었다. 전시(戰時)에 적국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나 가능한 살륙전은 그렇게 10여일간 광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아마 전투기가 명령대로 출격했다면 광주는 아예 공중 폭격의 대상이 되었을 게다.

그 참혹함을 겪은 이후 37년여가 흘러갔지만 그 날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발포 명령자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무장 군인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 살해·암매장 당했을 수백여명의 신원 또한 행방불명인 상태다. 1988년 국회 5·18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위 청문회, 김영삼정부의 5·18특별법에 근거한 검찰수사,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원회를 통한 조사 등 3차례의 진상 규명 기회가 있었지만 의혹은 대부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어설프게 주어진 면죄부가 그에게 당당함(?)을 주었을까. 학살의 주역 전두환은 회고록을 통해 '5·18은 폭동'으로 그날의 발포는 '자위권 발동 차원'이었으며 '나는 도살자·학살자가 아니다',' 광주 씻김굿의 제물이다'는 후안무치한 언설을 늘어 놓았다. 법원은 그의 회고록(1권·혼돈의 시대)에 대해 출판·배포금지 결정을 내렸다. 몇몇 보수논객과 극우 인터넷 매체 등은 번번이 5·18을 '북한 특수군이 개입한 시민폭동, 국가전복 기도' 등으로 깎아 내렸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5·18 주범인 전·노(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를 우리가 다 처단했다"고 했다. "5·18 특별법을 만들고, 5·18일 민주화 운동이라 규정한 것도, 망월동 국립묘지 성역화도 우리가 다 했는데 왜 호남에서 홀대, 핍박을 받아야 하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우스꽝스러운 속내도 털어 놓았다.

5·18 학살자와 주변인이 자행했던 일

자유·인권·평등·대동을 외쳤던 광주는 독재를 이어가려던 신군부 세력에 의한 살륙의 희생양이 되고서도 오랜 시간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한채 억눌려 지내야 했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들을 그렇게 어이없이 잃고도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정권이 몇차례 바뀌며 진실의 한자락이 드러나는 듯 했지만 실체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앞서 언급한 어설픈 면죄부에 의해 뚜껑은 덮이고 말았다.

지난 보수정권 10여년은 그나마 밝혀졌던 진실의 한자락이 다시 부정되는 시간들이었다. 빗나간 정권을 배후로 둔 짝퉁 보수들이 광주를 특정 이념의 틀에 가두는가 하면 광주를 부정하는 농단과 분탕질을 계속했다. 그 무참한 짓을 비호하고 은폐하고 묵인해준 대표적 세력은 자유한국당의 전신, 한나라당·새누리당이었다. 서슬 퍼런 총칼의 위세에 눌려 붓을 꺾고 ,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외려 그들의 달콤한 회유에 넘어가 추종의 입을 놀림으로써 돌아온 권력 부스러기에 취했던 이 땅의 언론 또한 그에 부역한 죄책을 벗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아렌트는 "폭정 아래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훨씬 쉽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 겨울의 촛불은 '우리에게','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교훈을 주었다. 악은 평범하지만 또한 뻔뻔하며 때로 추악한 속성을 드러낸다. 오늘 광주를 찾은 5·18 특조위가 발포명령자 등 80년 광주의 5월에 내재된 처음과 끝의 진실을 낱낱이 규명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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