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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문턱 한껏 높이며 북미 정상회담에 관심 드러내

입력 2020.07.10. 07:50 댓글 0개
개인 소회 밝히는 형식의 장문의 담화문 발표
'적대시 정책 철회해야 협상 재개' 조건 내걸고
미 독립기념일 DVD 요구하며 연락 채널 지정
북미수교와 주한미군 철수 등 돼야 비핵화 시사
한국 개입 반대 표명은 주한미군철수 노린 포석
[평양=AP/뉴시스]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달 4일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강력히 반발하며 "남측이 이를 방치하면 남북 군사합의 파기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을 맞는 마당에 이런 행위들이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2019년 3월 2일 베트남 호찌민의 묘소 헌화식에 참석한 모습. 2020.06.04.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이 10일 장문의 담화를 발표, 북미정상회담 재개 여지를 남기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또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가 담긴 DVD를 보고싶다고 밝힘으로써 미국이 자신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하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자신이 북미관계의 채널이 될 것임을 시사한 행동이다.

김여정은 담화는 현재 북미정상회담 문제가 거론되는 정세를 바라보는 개인적 소회를 밝히는 형식의 글로 돼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북미정상회담 논의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매우 상세하게 밝히고 있어 실제로는 가장 권위있는 북한의 공식 입장으로 봐야할 듯하다.

지난 4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북미정상회담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무미건조하게 발표한 것과 달리 현 상황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자세하게 밝히면서 회담 재개를 바라고 있다는 점도 강하게 시사했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모르긴 몰라도 조미(북미)수뇌회담과 같은 일이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른다"고 여지를 남겼다.

김여정은 그러나 "조미 사이의 심격한 대립과 풀지 못할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입장변화가 없는 한 올해중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도 조미수뇌회담이 불필요하며 최소한 우리에게는 무익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김여정은 정상회담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미국의 결정적인 입장변화가 있다면 가능하다는 식으로 정상회담 재개의 여지를 남기는 발언을 이어갔다.

김여정은 지난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단지 폐기와 제재 일부 해제를 협상안으로 내놓았던 일은 없던 일이 됐음을 강조하면서 북미협상의 기본주제가 '비핵화조치 대 제재해제'에서 '적대시철회 대 조미협상재개'의 틀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철회해야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협상 재개의 조건을 한껏 높여둔 것이다.

그렇지만 이같은 입장은 새롭다고 할 수 없다. 북한이 지난해 11월 스웨덴 북미 실무협상에서 천명했던 내용과 동일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여정의 담화문 발표는 북한이 북미정상회담 재개를 원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전하려는 측면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은 트럼프와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개인적 감정이 좋다고 하더라도 북한 정부는 현재의 미국대통령과의 관계에 따라 대미전술과 핵계획을 조정하면 안되며 트럼프 이후의 미국정권, 나아가 미국 전체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연내 북미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는 마당에 마크 에스퍼 미국방장관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운운하고 북한을 불량배국가라고 했다면서 정상들간의 관계가 좋다고 해도 미국은 북한을 거부하고 적대시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고 그러한 위협을 억제하며 그런 속에서 우리 국익과 자주권을 수호할 전망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실제적인 능력을 공고히하고 부단히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여정은 "우리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면서 한반도를 비핵화하려면 "우리의 행동과 병행하여 타방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밝힘으로써 북한이 비핵화의사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포기하지 않도록 유인하려는 계산이 엿보인다.

한편 김여정은 타방의 변화라고 할 때 제재해제를 염두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고 강조했다.

김여정이 요구하는 불가역적인 중대조치들은 일단 북미 수교, 주한미군 철수 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다만 이런 중대조치들은 제재해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계산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여전히 제재해제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협상이 재개되는 출발선을 자신들에게 크게 유리하게 맞춰놓겠다는 의도에서 제재 해제에 관심이 없다고 가림막을 친 모양새다.

김여정은 마지막으로 "나는 남조선(한국)을 향해서라면 몰라도 미국사람들을 향해서는 이런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해 한국에는 마구 대해도 좋지만 미국에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실제로 김여정의 이번 글은 지난달 김여정이 발표했던 상스러운 표현이 가득한 대남 담화문과 비교할 때 표현이 훨씬 절제돼 있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을 굳이 구분하고 나선 건 북미정상회담이 재개되는 과정에 한국이 끼어드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상회담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받아내려는 의도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미 사이에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놓고 이견이 크게 대립돼 있음을 겨냥한 포석이다.

김여정은 특히 담화문 말미에 미국의 독립기념일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어려 한다고 밝힘으로써 미국이 메시지를 전해올 통로를 사실상 지정했다.

앞으로 북미간 소통의 창구를 자신이 맡을 것임을 밝힌 것이다.

김여정은 김정은이 안부를 전해 달라고 했음을 밝힘으로써 트럼프 미 대통령을 다독이는 말로 담화문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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