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정의를 세워라' 5·18특조위 첫 방문지 5·18민주묘지는?

입력 2017.09.13. 14:15 수정 2017.09.13. 14:34 댓글 0개
1997년 완공·국립묘지 승격···민주주의 성지로 우뚝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본격 현장 조사에 앞서 13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5·18 당시 군부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된 오월영령들은 손수레에 실려 지금의 5·18민주묘지가 아닌 광주 북구 망월동 시립공원묘지 3묘역으로 옮겨졌다. 
   
126명의 주검은 폭도로 몰려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시립묘지에는 부상 뒤 숨진 희생자까지 추가 안장, 163기로 늘었다.

이들을 기억하고 있는 광주시민들은 이 곳을 망월묘역으로 부르며 항쟁 이듬해부터 추모제를 거행하는 등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시작했다. 
   
당시 군부는 망월묘역이 '민주주의 상징'으로 떠오르자 희생자의 묘를 파내게 하는 등 묘지 자체를 없애기 위한 획책을 부리기도 했다.  추모제를 주도했던 오월 유족회 등은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동시에 5·18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이뤄졌으며 희생자 묘역을 민주성지로 가꾸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해 5월13일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묘역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망월묘역에서 1㎞ 정도 떨어진 북구 운정동 산34번지 165㎢ 부지에 민주묘지를 조성키로 한 것이다.
  
위치를 놓고 일부 유가족이 반대하기도 했지만 국립5·18민주묘지는 1994년 11월 공사를 시작, 4년 만인 1997년 5월13일 모습을 드러냈다. 
    
망월묘역에 안장돼 있던 희생자들은 민주묘지로 옮겨졌으며, 묘역 앞에는 40m 높이의 5·18민중항쟁추모탑이 우뚝섰다.

5·18희생자의 영정사진이 보관돼 있는 유영봉안소를 비롯해 항쟁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5·18 추모관, 역사의 문, 민주의 문 등도 들어섰다. 

5·18은 그해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민주묘지에서 첫 정부 주도 기념식이 거행됐다.
  
2002년 7월27일 국립묘지로 승격 이후 관리사무소가 설치됐다. 2006년 7월27일 국립5·18민주묘지로 명칭이 변경됐다.

37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동안 민주묘지에 안장된 오월영령은 775명으로 늘었다. 
  
hgryu77@newsis.com


일반 주요뉴스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