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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5주년] ㉗첫 남한 총선거 이승만계 과반 획득 실패
입력 2020.07.05. 06:00 댓글 0개무소속 당선자 42.5% 차지 정국 핵심변수 부상
이승만계 가장 많은 후보 냈지만 무소속에 밀려
해방정국 3년의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한반도가 당면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과거의 실패를 성찰해야 현재의 과제를 파악할 수 있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광복 75주년을 맞아 새롭게 발굴된 사진과 문서를 중심으로 해방 직후 격동의 3년간을 매주 재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27. 제헌국회의원 선거와 헌법 제정
1948년 5월 10일 개운사(開運寺)에 마련된 동대문구을 지역구 선거투표소에 사과를 든 어린 아이가 부모와 함께 도착했다. 투표소 앞에 붙은 입후보자의 이름과 번호가 표시된 선거공보를 꼼꼼히 살피고 선거인명부를 확인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투표하는 동안 아이는 무엇이 궁금한지 옆 기표소를 쳐다봤다.
투표소 입구에는 선거감시단과 함께 향보단(鄕保團) 단원들이 배치돼 있었다. 향보단은 전국 3만의 국립경찰만으로는 1만 3000개가 넘는 투표소를 제대로 경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조병옥(趙炳玉) 경무부장이 지시해 조직한 우익 청년단체였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좌익계열의 파괴와 소요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용인됐다.
1948년 5월 10일 역사상 처음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5·10 총선거)가 실시된 날, 동대문구을 지역구 개운사 투표소의 풍경이었다. 그렇게 오전 7시에서 오후 7시까지 전국 1만 3272개 투표소에서 대다수 유권자가 대한민국 최초로 투표권을 행사했다.
이 선거구에는 10여 명의 후보자가 난립했지만, 한국민주당의 이영준(李榮俊) 후보와 무소속의 장연송(張連松) 후보가 각축을 벌인 끝에 3700여 표 차로 이영준 후보가 당선됐다.
이 선거는 3월 20일부터 4월 9일까지 20일간의 유권자 등록 기간을 설정하여 총유권자 813만 2517명 중 96.4%에 해당하는 784만 871명이 선거인 명부에 등재됐고, 이 중 95.5%가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발표됐다. 선거구제는 1선거구에서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했다.
당초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남북한을 통하여 인구비례에 의한 선거로 300석의 국회의원을 선출할 방침이었으나 38선 이북지역 할당 의석수 100석을 남겨둔 채 이남에 할당된 200석을 선출하도록 했다. 총선에는 모두 948명이 입후보해 평균 4.7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첫 총선거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거친 조건을 고려해 선거권과 피선거권에 일부 제한이 두어졌다. 선거권은 만 21세 이상의 모든 남녀 국민에게 부여됐지만,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나 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었던 자는 선거권을 박탈했고, 피선거권도 만 25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주어졌지만, 친일부역자들에게는 피선거권을 주지 않았다.
미 군정청도 선거의 성공을 위해 기민하게 움직였다. 1947년 6월 본국으로부터 홍보 전문가들을 초빙해 주한미군 산하에 특별기구(공보원)를 설치한 미군정은 선거 포스터와 팸플릿, 공중 살포용 전단과 신문, 주간지 그리고 영화와 라디오 방송 등 당시 활용 가능한 모든 미디어를 동원해 선거참여를 독려했다. 1948년 당시 문맹률이 20% 정도 됐기 때문에 투표 방법을 알리는 선거 포스터와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포스터가 대대적으로 뿌려지고 곳곳에 나붙었다.
첫 선거에 대한 관심은 컸다. 48개 정당·사회단체에서 후보가 난립했다. 입후보자 총수의 44%에 해당하는 417명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이례적인 현상도 있었다. 남북 협상파와 중간파가 선거 불참을 선언하면서 일부 인사들이 한국독립당이나 민족자주연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거나, 공천에서 탈락한 한국민주당 계열 후보자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이었다. 선거 유세장은 경찰과 향보단의 경비로 분위기가 자못 삼엄했다. 제주도의 2개 선거구는 4·3사건의 여파로 선거 자체가 이뤄지지 못했다.
선거결과는 예상을 빚나가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대통령으로 유력한 이승만 총재가 이끄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압승을 하지 못한 것이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가장 많은 235인의 후보자를 냈지만 불과 55석을 얻는데 그쳤고, 한국민주당도 29석을 얻어 참패했다(제주도 2개 선거구 보선 포함).
반면 무소속이 총 당선인의 42.5%에 이르는 85석을 차지해 다수파로 부상했고, 임시정부의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池靑天)이 설립한 대동청년단이 12석, 이범석이 설립한 조선민족청년단이 6석,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2석, 기타 11개 정당·단체에서 각 1석씩을 차지했다.
당선자 중 최다득표자는 서울 성동구에 입후보한 대동청년단의 지청천 후보로 4만 1582표를 얻었다. 무투표 당선자도 12명이나 나왔다. 서울시 동대문구 갑 지역구에 출마한 이승만 후보도 단독 출마해 무투표 당선됐다. 초대 경무부 수사국장을 지낸 최능진이 무투표 당선을 노리던 이승만 후보에 대항해 입후보했으나 이승만 추종 세력의 방해로 후보 등록이 취소됐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이승만 총재는 대통령 선출이 유력했지만,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후보는 대중성이 떨어졌고, 가장 강력한 보수정당이던 한국민주당도 지지도가 높지 않았던 셈이다.
다만 무소속 당선자 중에 한국민주당 계열이 많아 한국민주당이 다수당에 준하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승만은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위해 한국민주당이나 무소속 의원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됐다.
무소속의 강세는 2년 후인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까지 이어졌다. 제헌국회 총선에 불참했던 남북 협상파와 중간파계열의 인사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입후보하면서 전체의석의 60%인 126석을 무소속 후보가 차지했다.
1948년 5월 31일 198명의 당선 국회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헌국회가 열었다. 오전 첫 본회의에서 국회의장에 이승만, 부의장에 신익희(申翼熙)가 선출됐고, 오후에는 하지 주한미군사령관을 비롯해 미군정의 주요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헌국회 개원식이 열렸다.
이승만 의장은 15분의 개회사를 통해 “오늘 여기서 열리는 국회는 즉 국민대회의 계승이요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 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한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모든 의원들이 일어나 ‘맹세코 우리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기에 온갖 힘과 정성을 바치겠나이다’라는 뜻의 선서를 했다. 제헌국회는 곧바로 제헌헌법 제정에 착수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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