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한국전쟁과 마스크

입력 2020.06.24. 18:33 수정 2020.06.24. 20:07 댓글 0개
도철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경제에디터

원자폭탄에 일본은 결국 1945년 8월 15일 항복했다. 한반도는 편의에 따라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에 남북이 분할, 점령됐고 미·영·소 등 3국은 한반도 5년 신탁통치를 합의한다. 남측의 반탁운동에도 소련 지령에 북측에서 찬탁으로 돌아서 혼란이 일어났다. 1947년 9월 미국은 한국 문제를 유엔에 제기했고 결국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됐다.

이후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쟁이 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침략행위' 선언에도 전쟁이 계속되자 6월 27일, 트루만 대통령이 미군의 한국 지원을 명령한다.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 평화와 한반도 안전을 위해 원조를 제공한다는 권고문을 채택했다. 한반도 유엔 군사 활동을 위해 미국에 최고지휘권이 위임됐고 맥아더가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이후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네덜란드, 뉴질랜드, 룩셈부르크, 미국, 벨기에, 에티오피아, 영국, 호주, 캐나다, 콜롬비아, 태국, 터키, 프랑스, 필리핀 등 16개국이 한국에 군사 지원을 했고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등이 의료지원에 나섰다.

유엔군 참전 현황을 숫자로 보면 더욱 놀랍다. 모두 126만9천349명이 참전해 15만8천365명이 사망했고 710만 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실종자도 13만2천명이 넘는다.

나라 별로 미군 48만명이 참전해 3만6천940명이 전사했고 3천737명이 실종됐다. 영국군은 5만6천명이 참전해 1천78명이 숨졌고 179명이 실종됐다.세 번째는 터키다. 1만4천936명이 참전해 741명이 숨졌고 163명이 실종된다.

나라 이름조차 생소한 한국에 파병, 어렵게 살아남은 한 캐나다 참전용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시체 위를 기어 다니면서 살려만 달라고 기도했던 전쟁터. 모든 게 싫어 관심 갖지 않았던 한국이 이렇게 발전했으리라 생각도 못했다."

전쟁이후 70년, 이름만 들어도 아수라 전쟁터가 생각나 몸서리처질 이곳에, 젊은 날 전우의 목숨을 앗아가고 자신도 몸과 마음에 적잖은 상처를 입은 대한민국에, 이들이 '감사'를 전하고 있다.

코로나에도 자신들의 참전을 기억해 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몇 장의 마스크가 대한민국의 인사가 되고 젊은 날 그들의 깊은 상처를 위로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도철 경제부부장 douls18309@srb.co.kr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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