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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대로]비 새고 녹슬고 벌레까지···軍 관사, 낡은데다 태부족

입력 2020.06.07. 10:30 댓글 0개
전국 각지 관사 노후화로 생활 불편 사례 속출
강원도 접경지역 간부 증원 속 관사 부족 사태
군무원 대체 경향 강해지는데 관사 배정 배제
[서울=뉴시스] 국방부 청사. 2020.02.28. (사진=뉴시스DB)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최근 군 장성이 자신이 머무는 관사에 닭장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관사에 지네가 출몰하는 탓에 지네를 잡아먹을 닭을 키우려 했다는 후문이다.

이를 통해 고급 건물에서 떵떵거리며 살 것 같은 군 장성이 닭을 키워 벌레를 잡아야할 만큼 낡은 관사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재조명됐다.

실제로 직업군인 절반 이상이 군(郡) 이하 행정구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들이 살고 있는 관사 대부분이 노후 주택이다.

부산 해운대구 모 아파트에 있는 관사를 썼던 한 예비역 군인은 비가 올 때마다 긴장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거실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천장에서 떨어진 비로 오랜 기간 모아온 책이 젖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비가 새는 관사를 고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관리당국에 문의하자 '건물 자체가 오래돼 외벽에 비가 스며들어 건물을 새로 짓지 않는 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충남 계룡시 모 아파트 관사에 살던 한 군인은 저녁식사 후 부엌 바닥이 온통 젖어있어 놀랐다. 식사를 마치고 보니 싱크대 아래쪽이 물바다가 돼있었다. 낡은 싱크대 배수관에서 물이 샌 것이었다.

경기 포천시 일동면 모 아파트 내 관사에서 살던 한 군인은 녹물 때문에 고생했다. 상하수도가 오래돼 녹물이 나왔다. 배수구에서는 빨간색 실 모양의 길쭉한 벌레가 기어 올라오기 일쑤였다.

경기 연천군 전곡읍 모 아파트 관사에서 살던 군인은 놀이터 때문에 속이 상하는 일을 경험했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놀이기구에 녹이 슬어있었는데 이 군인의 자녀가 놀이터에서 놀던 중 녹이 슨 부위에 크게 다쳤다.

강원 철원군 동송읍 모 아파트 관사에 머물던 군인은 곰팡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생후 18개월 아이가 기침을 심하게 해서 병원에 가보니 오래된 벽지에서 비롯된 곰팡이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인천 모 아파트 관사에 살던 군인의 5세 자녀 피부에서는 발진과 물린 자국이 나타났다. 병원에 갔더니 진드기, 지네, 개미 등 벌레에 의한 피부질환이란 진단이 나왔다.

이 외에도 낡은 관사로 인한 불만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관사들은 공동주택 바닥두께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건물이 대부분이라 층간소음이 심하다. 윗집과 아랫집, 옆집의 발소리는 물론 휴대폰 진동까지 들리는 수준이다.

도배 비용을 지원하지 않는 부대가 많아 자비로 공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낡은 철제 섀시가 설치된 가구가 많아 강풍이 불거나 장마가 들면 불안하다. 주차 공간 부족 역시 오래된 불만사항이다.

최근에는 군 주거 정책이 국방개혁2.0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군부대 해체와 재배치를 뼈대로 한 정부의 '국방개혁2.0'에 따라 강원도 접경지역에만 간부 수천명이 추가 배치되지만 관사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이들 간부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내년부터 2025년까지 관사를 신축할 계획이지만 일부 지역에선 이미 숙소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관사가 부족하면 기혼자가 가족과 떨어져 모텔 등에서 별거 상태로 지내야 한다. 소령까지 진급해도 2인1실에서 동료와 함께 지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 정책에 따라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군무원은 주거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국방부는 올해 군무원 4139명을 선발한다. 전년 대비 180여명 증가한 규모다. 이는 국방개혁2.0에 따라 비전투분야 군인 직위를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는 데 따른 조치다.

문제는 군무원들을 전국 각지로 배치하면서 관사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사에 여유가 있는 부대는 군무원에게도 입주 기회를 부여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현역에게 줄 관사마저 부족한 탓에 군무원은 아예 논외다. 이 때문에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부대로 발령이 난 군무원은 평일에는 모텔 등에서 지내고 주말과 휴일에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사례가 많다.

이처럼 열악한 주거 환경이 단기간에 개선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정부 예산 배정에 그 증좌가 있다. 정부는 올해 노후·부족 군관사·간부숙소 신축·매입·리모델링 예산으로 예년 수준인 7164억원(관사 5120억원, BTL정부지급금 2044억원)을 배정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223억원이 삭감됐다.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 방식으로 마련될 예정이었던 관사 수가 줄어들게 됐다.

관사난에 시달리는 우리 군과 달리 주한미군은 차원이 다른 주거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현역 장병과 군무원들에게 월 200만원에 달하는 임차 비용을 지급한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은 비용 제약 없이 미군기지 인근 고급 주택을 구해 편하게 살 수 있다.

그간 주한미군 장병들이 시세보다 훨씬 높은 임차료를 제시하면서 집을 구하고 다닌 탓에 수년에 걸쳐 용산 미군기지 주변 주택 임차료가 덩달아 뛰어버렸다.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엄청나게 올라간 용산 미군기지 주변 집값과 임차료는 모두 다 주한미군 때문"이라며 부러움 섞인 푸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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