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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금산분리 빗장 풀자" 공정위마저 OK한 'CVC' 대체 뭐기에
입력 2020.06.07. 06:00 댓글 0개"금산분리 훼손" 계속 반대하던 공정위도 물러서
정부, 대기업 CVC 허용해 벤처 투자 시장 활성화
'대기업의 스타트업 M&A→창업 확대 유도' 기대
재벌 경제력 집중·편법 승계에 악용된다…비판도
[세종=뉴시스] 김진욱 기자 = 지난 50년가량 성역처럼 지켜졌던 '금산분리'(일반 기업이 금융사를 보유해 금고처럼 쓰지 못하도록 분리해두는 것) 원칙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여당이 일반 지주사의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주식 보유를 허용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이를 계속 반대해왔던 공정거래위원회마저도 최근 입장을 바꾼 모양새다.
7일 정부에 따르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일 '2020년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하경정)'을 발표하며 "일반 지주사의 CVC 제한적 보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당도 나섰다. 3일에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독점 규제와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기재부와 여당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지난 1분기 신규 벤처 투자액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1분기 신규 벤처 투자액은 7463억원으로 전년 동기 7789억원 대비 4.2% 줄어들었다. 벤처 투자액의 선행 지표인 신규 벤처 펀드 결성액은 21.3%나 감소했다. 신규 벤처 펀드 결성액이 줄어든 것은 13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는 CVC를 통해 벤처 투자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다.
CVC란 대기업이 출자하는 벤처캐피털(VC)을 가리킨다. 스타트업을 자본 투자 대상으로만 보는 일반 VC와 달리, CVC는 자본과 대기업의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제공해 더 적극적으로 육성한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해 기존 사업의 가치를 높이거나,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다각화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의 CVC 활용이 저조하다. 지난 2018년 카카오(카카오벤처스)가 세계에서 8번째로 활발하게 투자했다는 평가(VC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 집계)를 받았을 뿐, 2019년 기준 총자산 규모 5조원 이상 기업 집단 59곳 중 CVC를 보유한 곳은 14곳에 불과하다. 삼성(삼성벤처투자)·한화(한화인베스트먼트)·미래에셋(미래에셋벤처투자) 등이다.
특히 지주사 체제의 지배구조를 도입한 SK·LG 등은 CVC 직접 보유가 불가능하다.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를 불허하는 현행 공정거래법 때문이다. 이 때문에 SK·LG는 이런 규제가 없는 해외에서 SK텔레콤벤처스(SKT Ventures)·LG테크놀로지벤처스(LG Technology Ventures) 등의 CVC를 운용하고 있다. 기재부와 여당은 이런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보고 규제 개선에 착수한 것이다.
공정위는 그동안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 허용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김상조 전 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금산분리 원칙을 깨려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반 지주사가 '벤처 지주사'를 설립, CVC를 간접 보유하게 하는 벤처 지주사 제도 활성화 방안을 지난 2018년 추진했지만, 이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 법률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벤처 지주사 제도 활성화가 실패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위기설까지 불거지자 강경했던 공정위가 입장을 선회한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 시절 벤처 투자 확대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 허용 대신 벤처 지주사 제도 활성화를 밀어붙였던 공정위가 이번에는 한 발 빼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기재부와 여당은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자금이 벤처 생태계에 유입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기업이 CVC를 통해 스타트업 M&A에 나서면 기존 VC는 벤처 기업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Exit)할 수 있고, 이 돈이 시장에 다시 투입되면 창업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대기업-VC-창업가 모두에게 좋은 선순환 구조다.
반대 측에서는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면 재벌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일 논평을 내고 "정부는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 법률안에 벤처 지주사 제도 활성화 방안을 이미 담았는데,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까지 허용하는 것은 금산분리 원칙을 허무는 것이다. 공정 경제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CVC가 재벌의 편법 승계에 악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기재부는 이번 하경정에 '비상장 벤처 기업의 차등 의결권(지배 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 주식 발행 허용'을 함께 포함했는데, CVC 보유가 허용되면 총수 일가가 차등 의결권을 지닌 스타트업을 지주사가 지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CVC가 총수 일가의 사익을 키워줄 수 있다는 우려다.
이재영 중앙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는 "중소벤처기업부 모태 펀드, KDB산업은행 VC 펀드 등 벤처 투자 시장에는 돈이 이미 넘쳐난다"면서 "현대자동차의 현대글로비스 사례 등 재벌이 법 제도의 허점을 편법 승계에 악용한 사례가 많은데,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 허용을 굳이 추진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뉴시스에 전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는 "시민 단체와 학계 등지에서 이런 우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 허용이 재벌의 편법 승계에 악용되지 않도록 충분한 안전장치를 만든 뒤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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