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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전범기업 자산 매각 임박···한일 관계 다시 살얼음판

입력 2020.06.04. 16:57 댓글 0개
8월4일 '공시 송달' 효력 발생…현금화 명령 가능
日 "현금화 되면 심각한 상황" 보복 조치 거론
정부 "합리적 해결 위해 日과 긴밀한 협의 노력"
문희상安 폐기 후 강제징용 관련 입법에 주목
[나고야(일본)] 전진환 기자 = 강경화 장관이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23일 오후(현지시각) G20(주요 20개국)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일본 나고야 관광호텔에서 양자회담을 하기위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19.11.23.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국현 기자 =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 절차가 현실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일이 강제징용 해법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강도 높은 보복 조치를 예고하고 있어 오는 8월 한일 관계가 또 한 차례 고비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에 따르면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 1일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포스코의 합작회사인 피엔알(PNR)에 압류명령 결정 등에 대한 공시 송달을 결정했다. 공시송달은 당사자 주소 등을 알 수 없거나 송달이 불가능할 경우 서류를 법원에 보관하면서 사유를 게시판에 공고해 내용이 당사자에게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앞서 대법원은 2018년 10월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회사 측에 '피해자 1인당 1억원씩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대리인단은 대구지법 포항지원으로부터 일본제철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주식압류명령 결정을 받고, 일본제철에 송달 절차를 진행했으나 일본 정부는 서류를 한국으로 반송했다.

일본 전범기업들의 자산 매각 절차와 관련해 법원이 공시송달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식압류명령 결정은 2개월 후인 8월4일 송달 효력이 발생한다. 이후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돼 일본제철의 국내 자산에 현금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10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 시민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경제침탈 아베규탄! 한일군사보호협정 폐기! 광주시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2019.08.10. hgryu77@newsis.com

우려했던 일본 기업의 자산 매각이 가시권에 들어오며 한일 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일은 여전히 징용 문제에서 파생된 수출 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지난해 7월 대(對)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취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와 WTO 제소 카드를 내세웠다가 지난해 11월 지소미아 조건부 유예로 한 차례 봉합했다. 하지만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진전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정부는 다시 WTO 제소 절차를 재개키로 했다.

일본 정부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현금화 조치가 실행될 경우 강도 높은 보복을 예고하고 있어 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 보상 문제는 해결됐으며,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압류 자산 현금화는 심각한 상황을 부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일본 기업의 정당한 경제 활동의 보호 관점에서도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염두해 두며) 계속 의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모테기 외무상도 지난 3일 공시 송달과 관련해 후지TV에 출연해 "현금화가 되면 심각한 상황이 된다"며 "그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전날 강경화 외교장관과 통화에서도 일본 기업 재산 현금화는 "심각한 상황을 부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한국 측 자산 압류와 한국산 제품 관세 인상 등 다각도로 보복 옵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해 12월 현금화를 실행할 경우 "한국과 무역을 재검토하거나 금융 제재에 착수하는 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도쿄=AP/뉴시스]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2월 2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2020.05.07.

다만 공시 송달 효력이 발생하는 8월에 자산 매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시 송달이 결정된 이후 채무자 심문, 심문서 송달, 매각 명령의 절차가 진행되고, 피고 측의 항고, 재항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현금화 명령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만큼 빠르면 연내에 현금화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공시 송달 결정과 관련해 "사법 절차이기 때문에 별도 입장이 없다"고 선을 그은 채 한일간 긴밀한 대화를 이어간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사법 판단을 존중하고 실질적인 피해자의 권리가 실현되고, 양국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해 나가는 열린 입장으로 임하고 있다"며 "일본과 긴밀히 협의를 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한일간 파국을 막기 위해선 강제징용 해법 마련 등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지난해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정부안을 수정해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 민간 부문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재단을 설립해 강제징용 피해자 등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안을 제안했으나 20대 국회가 종료되며 폐기됐다.

하종문 한신대 교수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제안한 법안이 물건너 갔지만 21대 국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법안에 담아서 입법화에 나선다면 현재 정면 충돌 기류를 바꾸고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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