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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란군인' 누명 쓴 장병들의 명예회복을 기대하며
입력 2020.05.29. 13:21 수정 2020.05.31. 20:20 댓글 0개5·18 40주년을 지낸 뒤 국민의 관심은 진상조사로 모아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송선태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5·18의 핵심 정신은 불의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이 정신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탱해주고 있다"면서 "이번 조사는 처벌이 목적이 아닌 진실과 화해추구에 있다"고 강조했다.
'내란군부' 범죄사실 먼저 제대로 알려야
조사위원회는 최고 지휘관을 중심으로 조사했던 과거 방식과 달리 상향식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또 숨김없이 진실을 말한다는 뜻의 '파레시아(parrhesia)운동'도 함께 한다고 한다. 그리해 작전에 참여했던 장교와 병사들의 증언으로 의혹의 퍼즐을 꿰맞춘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전두환·노태우 등 최고 지휘부는 '정치적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12·12 반란에 이어 정권을 잡기 위해 5·17 계엄령 확대와 광주에서 유혈진압을 하는 내란'(대법원 판결)을 일으켰는데 하급 장병들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그들의 명령에 따랐었다.
그 이후 오랫동안 자신이 광주에서 저질렀던 불법행위를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고민했다. 자식이나 손자들이 교과서에서 배웠다며 "5·18이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할 때마다 뜨끔했던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이 진실을 털어놓음으로써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동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5·18은 '1980년 이후 1987년 6·10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쟁취, 1997년 국가기념일 지정이라는 17년간의 국민적 투쟁'으로 정의(定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곡·폄훼와 가짜 뉴스까지 난무하게 된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이 전·노 등 최고 주동자 15명에게 반란죄(12·12),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5·18)로 판결했으나 겨우 8개월 뒤인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이 특별사면해 버렸다. 이러다 보니 당시 참여했던 군인들도 재판을 정치적 요식행위로 여기고 반성하지 않게 됐다.
둘째, 검찰이 전·노 등 겨우 16명만 기소하다보니 처벌받아야 할 많은 내란군인들이 법망을 빠져 나갔다.
셋째, 5·18특별법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 자유한국당 일부 국회의원마저 5·18을 '괴물집단', '폭동'이라고 발언하면서 가짜뉴스가 범람하게 됐다.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첫째, 대법원의 판결을 국민에게 대대적으로 알려야 한다. 전·노는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범죄자다. 또 광주시민의 저항은 '내란을 일으킨 내란군부에 대해 주권자로서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했다. 의문을 가진 국민에게 이 판결을 제대로 알려 조사의 의미를 확실히 해야 한다.
둘째, 5·18을 비난하는 자는 국가기념일에 반하는 행위이므로 강력히 처벌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1980년 전두환 내란군부와 언론으로부터 시작돼 오늘날 유튜브까지 이어져 온 유언비어와 가짜뉴스를 박멸할 수 있다.
셋째, 이번이 마지막 조사나 다름없으므로 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주거나 경찰·검찰과 공조수사, 진술 거부자에 대한 처벌, 특별검사제 도입까지 두루 검토해 법적 걸림돌을 없애야 한다.
넷째, 과거 9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내용, 그리고 기소하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조사를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특히 탄흔은 남아있으나 사격을 부인하고 있는 헬기 조종사들에 대해서 5·18 이후 활동과 내란군부와의 관계 등까지 정밀 수사해 단서를 찾아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광주에 투입된 2만여명의 장병이 소속된 부대 이름과 날짜별 작전내용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서 당사자의 고백이나 주변의 권유로 진실을 털어놓도록 유도해야 한다.
'고백'하는 자에겐 광주시민의 관용을
광주시민도 '진실'을 밝히는 자에게는 관용과 화해를 베푸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반면 출석을 거부하는 '여전한 가해자'는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장병들이 지우고 싶어했던 과거의 기억을 역사에 넘겨주고,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명예를 회복했으면 한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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