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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스메콰르텟 "힘든 시기에 동료들 만나 구원"

입력 2020.05.31. 09:29 댓글 0개
런던 위그모어 홀 국제 현악사중주 콩쿠르 우승팀
6월9일 국내 데뷔 리사이틀
[서울=뉴시스] 왼쪽부터 배원희, 하유나, 김지원, 허예은. 2020.05.31. (사진 = jino park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슬럼프로 힘든 시기에 동료들을 만나 같이 연주를 하며 구원을 받았죠."(허예은)

현악사중주단은 악기로만 연주하지 않는다. 개성 강한 연주자들이 섬세한 현들의 합을 선보여야 하는 만큼, 연습·무대의 시간뿐 아니라 내밀한 삶까지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다채로운 삶들의 화음까지 듣고 싶다면, '에스메 콰르텟'을 찾으면 된다.

에스메 콰르텟은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 중이던 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와 하유나, 비올리스트 김지원, 첼리스트 허예은이 2016년 결성했다.

현재 한국 현악사중주단 중 가장 뜨거운 콰르텟이다. 2018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 위그모어 홀 국제 현악사중주 콩쿠르에서 한국인 실내악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또 작년 가을 한국인 실내악단 최초로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의 데뷔 콘서트와 런던 위그모어 홀을 비롯한 15회의 영국 전역 투어 연주를 성료했다.

최근 서울 장충동 호텔에서 마주 앉은 네 멤버들과 커피를 주고받다 보니, 무지갯빛 속을 톺아보듯 신비로운 아티스트들의 시원을 음미할 수 있었다.

리더인 배원희는 어릴 때부터 '절대음감'을 자랑했다. 동요를 배우는 족족 외워서 불렀다.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피아노 학원을 먼저 다녔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이 빈필하모닉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한 것을 보고 이 악기에 홀딱 반해버렸다. 평소 노래하는 것을 즐겼는데, 바이올린이 마치 노래하듯 연주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이후 바이올린을 전공하게 됐다. 미국에 있는 이모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시험을 치른 명문 커티스 음원에 덜컥 붙어서 중3때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홀로 타지에서 생활하며 음악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울=뉴시스] '꼬마 에스메 4인방',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원희, 하유나, 허예은, 김지원. 2020.05.31. (사진 = 에스메 콰르텟 페이스북 캡처) photo@newsis.com

섬세하고 세밀한 연주를 추구하는 배원희의 감각이 선이 굵고 강렬한 미국 스타일과 잘 맞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유럽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독일 연주 스타일이 그녀와 잘 맞았다.

영국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공연하는 '벨체아 콰르텟'을 보고 '콰르텟이 하고 싶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독일을 중심으로 콰르텟 멤버들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첼리스트 허예은이 처음 배운 악기는 다섯 살 때 시작한 바이올린이었다. 그 다음은 피아노였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음악을 좋아했다. 어린 나이에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맨 뒷줄에 앉아 떠들거나 졸지 않고 가만히 앉아 연주를 다 들었다고 한다.

첼로와의 만남은 우연이였다. 언니의 초등학교 오케스트라 발표회에서 첼로를 보고 언니에게 "저 큰 바이올린 할래"라고 말했단다. 이후 자연스럽게 전공을 했고 서울대 재학시절 김지원, 다른 멤버들과 함께 현악사중주단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비올리스트 김지원도 다섯살 때 바이올린을 먼저 접했다. 어릴 때 발레를 하기도 한 김지원은 팔·다리가 길어 비올라가 잘 어울리겠다는 주변 추천으로, 비올라를 본격적으로 잡았다. 주변에서 잘 한다고 얘기했지만, 관성적으로 해왔다.

[서울=뉴시스] 에스메 콰르텟. 2020.05.31. (사진 = jino park 제공) photo@newsis.com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왼쪽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4∼5개월 간 연주를 하지 못했다. 대신 각종 연주회를 보러 다녔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등을 접하면서 실내악의 매력을 알게 됐다. 이전까지 그녀의 음악 세계에는 솔로만 있었다. 콰르텟을 알게 되면서 콰르텟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고 대학교 때 허예은을 만나서도 "콰르텟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2바이올린 하유나는 아버지가 결혼 선물로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선물한, 로맨틱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음악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정도로 음악 애호가였다. 어머니는 하유나에게 처음에 피아노를 배우게 했지만, 그녀는 그 피아노 밑에 숨어 펑펑 울 정도로 큰 관심은 없었다고 했다.

이후 바이올리니스트를 접하면서 이 세계에 빠져 들었다. 세상에 직업은 바이올리니스트 밖에 없는 줄 알았을 정도다.

서울대 음대에서 이경선 교수를 사사하고 실내악의 세계를 깨달았다. 파리고등국립음악원으로 유학을 갔고, 이 음악원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기도 한 배원희의 연락을 받았다.

그녀에게 배원희는 학창시절 '선망의 선배'이기도 했다. 예원학교 시절 배원희가 커티스 음악원에 합격한 뒤 교내에 걸렸던 '축하 플래카드'를 여전히 기억한다. 배원희의 콰르텟 합류 제안에 "저 역시 바라던 바"라고 화답했다.

에스메 콰르텟이 내달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여는 국내 데뷔 리사이틀은 이들의 성장 서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14번, 진은숙 현악사중주 '파라메타스트링(ParaMetaString)',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를 모티브로 삼은 대니얼 갈리츠키의 '어 런던데리 에어(A Londonderry Air)',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다.

[서울=뉴시스] 에스메 콰르텟. 2020.05.31. (사진 = jino park 제공) photo@newsis.com

특히 진은숙의 파라메타스트링은 1996년 크로노스 콰르텟의 초연에 이어 작곡된 지 23년만에 에스메 콰르텟이 처음으로 녹음했다. 지난 3월 프랑스 알파클래식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인터내셔널 데뷔 앨범에도 실렸다. 국내 데뷔 리사이틀에서 초심을 담아내기에 알맞은 선곡이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곡은 현악사중주의 정수로 통하는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1817년 2월 작곡한 가곡 '죽음과 소녀'의 선율을 2악장에 다시 사용한 곡이다. 가곡의 가사는 독일의 시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다. 소녀를 데려가려는 죽음, 그 앞에서 공포에 떠는 소녀의 이야기다.

배원희는 "사신이 유혹하려고 하면, 소녀가 거부하는 내용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아프신 분들도 많고 공포심을 가지는 때에 함께 어둠을 물리쳤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곡"이라고 말했다.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에스메콰르텟도 코로나19로 인해 상당수 공연이 취소됐다. 멤버들 역시 속상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배원희는 "무관중과 온라인 공연으로 청중을 만나고 있는데, 채팅창으로 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연주 방식이 흥미로웠다"면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연주자들로서 유연하게 대응을 잘 하고 싶다"고 했다.

허예은은 "음악을 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걸 돌아보는 시간"이라고 했다.

젊은 콰르텟답게 팀 앞날에 청사진도 이미 펼쳐놓았다. 특히 자신들끼리 콰르텟을 '에스메 주식회사'로 부르며 일종의 '부 캐릭터'도 만들어놓았다. 완대표(배원희), 하이사(하유나), 김부장(김지원), 허과장(허예은)이다.

팀에서 해외 축제, 공연장 관계자들과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실무를 총괄하는 배원희는 "러브콜을 받으면, 우리 연주뿐만 아니라 성장 이야기와 메시지까지 잘 전달할 수 있는 연주 방식에 대해까지 함께 공유하려 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에스메 콰르텟. 2020.05.31. (사진 = jino park 제공) photo@newsis.com

그런데 사실 현악사중주 멤버들은 상당수가 남성 또는 혼성으로 구성된다. 네 여성 연주자로만 이뤄진 팀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래서 이들은 초반에 결혼, 가족계획 등의 무례한 질문들을 마주하기 일쑤였다. 멤버들 외모도 수려해서 외적인 질문도 따랐다.

하지만 실력으로 이들은 각종 수식을 스스로 떼어내 버리고 연주자 자체로서 인정받아나가는 중이다. 하유나는 "각종 꼬리표 없이 평등하게 대우를 받는 것이 중요하죠. 아티스트 그 자체로 무대에 올랐으면 한다"고 바랐다.

허예은은 "'여성판 누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하다"면서 "저희는 누구의 다음 주자가 되고 싶다기보다 에스메 콰르텟의 음악, '저희의 음악'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고어로 '사랑받는'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이 콰르텟이 연주자로서 가장 사랑 받는다고 느낄 때는 언제일까. "객석에 전혀 어수선함이 없이 저희에게 집중하는 것이 느껴질 때의 그 고요함을 사랑해요."(허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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