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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어서 빨리 물러가라"···송가인 모친의 손님굿이어라

입력 2020.05.29. 09:34 댓글 0개
한국문화재재단 창립 40주년 특별공연
LG아트센터에서 코로나 극복 기원 '쉘위풍류'
[서울=뉴시스] 송순단. 2020.05.29. (사진 = 유튜브 문화유산채널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손님아, 손님아…. 이 배를 타 주거라…. 어서 빨리 물러가라. 처용신이여."

역병에 황량해진 마음을 달래는 목소리. 28일 밤 스마트폰을 통해 유튜브를 보면서 피곤하고 허기진 몸을 국수로 달래다, 위로에 몸서리쳤다.

이날 밤 LG아트센터에서는 굿판이 벌어졌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펼친 기념 특별공연이자 코로나19 극복의 기원을 담은 '쉘위풍류'다.

유튜브 문화유산채널을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됐는데, 가장 눈길을 끈 무대는 송순단 명인(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의 염원의 굿판이었다.

'미스 트롯'의 트로트 스타 가수 송가인의 어머니로 알려진, 송 명인은 진도에 살면서 실제 굿을 하고 있는 당골(무녀를 가르키는 전라도 사투리)이다. 송가인은 이날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늘은 엄마 공연!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라고 응원하기도 했다.

송 명인이 이날 7분가량 선보인 '손님풀이'는 역신을 고이 보내는 제를 가리킨다. 손님풀이는 천연두나 홍역과 같은 역신, 즉 '손님 신'을 향해 해를 끼치지 말고 물러 가라며 축원하는 진도씻김굿 중 하나다. 손님굿 또는 손굿이라고도 한다.

곳곳에서 다시 확산세를 보이고 있는 코로나19의 모퉁이를 어루만지는 송 명인의 소리는 검게 버티고 있는 재앙의 강을 푸르게 넘어섰다. "바이브레이션과 트레몰로 사이의 오묘한 음의 오솔길로 안내하는 목소리"(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가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송 명인은 "밤새 해도 부족한데, 짧게 하라고 해서 답답하지만"이라면서도 무대가 시작되자 무엇에 홀린 듯, 장구를 직접 치며 구음(口音) 같은 주문을 되뇌었다. 봄이 와도 겨우내에 있는 것처럼 웅크렸던 희망의 새순이 일어선 듯했다.

송 명인의 손님굿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온라인에서는 국가적 재난에 '무슨 굿'이나며 영문 모를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메르스 때도 지역 곳곳에서는 전통 방식의 '손님굿'이 펼쳐졌다.

'손님굿'은 역병이 창궐했을 때 전통적으로 종일 치성(致誠), 즉 특정 대상에 대해 신앙 차원에서 정성을 들여 기원한 것이다. '손님'은 몸에 붙은 병을 지칭한다. '천연두'를 '손님마마'로 가리킨 것에서 보듯, 우리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도 융숭하게 대접해서 되돌려 보냈다.

[서울=뉴시스] 송순단. 2020.05.29. (사진 = 유튜브 문화유산채널 캡처) photo@newsis.com

결국 지금 손님굿을 지내는 것은, 제사를 지내 전염병을 쫓자는 미신이 아니다. 낯선 것에 대한 무례함으로 화를 자처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예를 갖춰 지금을 이겨내자는 태도에 가깝다. 우리랑 이제는 먼 얘기라 여기며 오만하게 굴던 사이 바이러스는 찾아왔다.

결국 굿의 비는 마음은 삶 자체를 존중하고, 다시 깨긋하게 만드는 의식이다. 이날은 송 명인을 제사장 삼아 불가항력적인 역병에 인간적 예의를 최대한 차려낸 자리다.

이런 집단의식은 연극의 기원이기도 하다. 예전부터 내려온 굿과 제사에는 지금의 공연예술처럼 노래, 춤이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을 집단으로 관람하는 행위는 공동체 안에서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송 명인의 '손님풀이'는 이날 역신을 물리는 '기양제(祈禳祭)'의 하나로 열렸다. '손님풀이'를 시작으로 세 장르가 합쳐지며, 멋진 전통 공연이 탄생했다. 처용신이 현신해 역병을 이겨내고자 하는 이들의 염원에 대해 춤으로 화답하는 대목인 박영수의 '처용탈춤', 신을 흥겹게 해 돌려보내는 대목인 풍류도감의 판굿이 이어졌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예전 비디오 테이프 앞에 꼭 마주해야 하던, 이제는 평생 추억거리가 될 것만 같던 문구가 다시 와 닿는 시절이 왔다.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아제르바이잔 등 각국 외교대사들이 모인 이날 자리에서 "처용에게 삼가 고한다. 코로나19 극복을 통해 몸과 마음의 평안을 찾고, 청정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역병 때문에 어느 때보다 서로 맺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세계가 하루 빨리 정상화돼서 문화유산을 진정으로 누리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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