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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조원 짜리 영업 비밀이 클릭 몇 번으로 새나가는 세상
입력 2020.05.19. 11:10 수정 2020.05.19. 20:12 댓글 0개최근 영업 비밀 침해가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퇴직 연구원 23명이 무단으로 연구자료를 반출했다가 적발되는 사건은 영업비밀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는지 현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수사당국이 일부 퇴직 연구원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방관련 무단자료반출은 그 자체가 국가 안보를 위협 할수 있기 때문에 가볍게 볼 사안이 결코 아니다. 국방관련 기업의 영업비밀이 불법으로 유출되면 안보 위협과 함께 기업의 생존마저 흔들리게 된다. 유출 기업 임원이 구속되는 선에서 끝났지만 중국 경쟁업체로부터 반도체기술 유출은 이제 시작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로 인한 피해 금액만 약 10조원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니 산업 전반의 기술유출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부정경쟁방지법)로 영업비밀 침해자에 대해 징벌적 손해 배상과 형사 처벌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적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
판례는 법적으로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 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영업비밀을 보호 받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상당한 노력' 또는 '합리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모호해 어디까지가 '상당하고, 합리적 노력'인지는 규정하기 쉽지 않다. 다시말해 어디까지가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지가 헷갈린다. 우리 법은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다는 것의 구체적 범위가 규정되지 않고 노력의 상당성과 합리성은 기업의 규모 등을 고려해 판단한다는 모호한 기준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률전문가들 조차 어디까지가 영업 비밀이라고 똑부러지게 대답하기 어려운 처지다. 이제까지 판례들을 취합해 대강 법적 요건을 살펴보면 '비밀로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해당정보가 기술적 접근관리, 인적·법적인 관리, 조직적 관리가 이뤄졌는지를 판단하되 각 조치가 합리적이었는지는 기업 규모나 해당정보의 가치, 해당 정보에 일상적인 접근을 허용해야 할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돼있다.
지금 세계경제는 무한 경제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포스트 코로나를 노리는 각국의 보호 무역이 강화되면서 영업비밀보호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반도체, 철강, 화학 등 첨단기술 집적분야에서의 영업비밀 수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경쟁국의 영업 비밀 빼가기는 한마디로 위험수위다. 그중 중국의 도전은 대단위 위협적이다. 수조원 단위 영업비밀을 빼내기에 혈안이다. 최근에는 동남아 국가들까지 영업비밀 빼내기에 가세하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를 감안해 최근 2019년 1월 8일자로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해 기존의 '상당한 노력 또는 합리적인 노력'이라는 문구를 삭제함으로써 비밀관리 요건을 일부 완화했다. 다만 아직 판례가 이에 대한 판단이 내려진 것은 아니므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최근 상황의 보완책 하나로 특허청 산하 국가기관인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서는 영업비밀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컨설팅을 기업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영업비밀 보호 컨설팅을 받은 기업은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서 파견하는 법률전문가와 보안전문가의 도움으로 영업비밀 관리체계를 법적, 물리적으로 구현할 수 있고,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이 개발한 문서관리시스템을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앞으로 4차산업혁명 시대는 지식재산권 보호와 더불어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했다.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영업비밀침해는 우리 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모호한 기준으로 한국경제를 지키는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가와 민간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수조원짜리 영업 비밀이 클릭 몇 번으로 넘어가는 세상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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