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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0주년 맞는 5·18,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입력 2020.05.14. 11:06 수정 2020.05.17. 19:23 댓글 0개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해이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언제 세월이 그렇게 흘러 40년이나 되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4학년 복학생으로 교련복을 입고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에 신촌에서 광화문으로 그리고 서울역으로 뭉쳐다니면서 '전두악과 신현악은 물러나라'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녔던 그 시절이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지상광장과 남대문 사이 거리에서 10만명 이상의 대학생 및 시민이 모인 시위를 마치고 교통편이 없어 남산을 걸어서 넘어 약수동 집으로 돌아온 시간이 새벽 4시 경이었다. 그리고는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당시 우리들에게는 광주에서 모이자는 사발통문이 돌았다.
조용히 광주행을 준비하던 중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신문사에 취업을 해 있던 학보사 기자 출신 여학생 동창에게서 광주에서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희생자가 나오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니 조심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는 사실상 광주 진입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전개되었고 결과적으로 광주민주화운동에 직접 현장에서 참여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부채의식으로 지난 40년을 살아온 셈이다.
1979년 12·12사건을 통해 군부를 장악한 신군부는 계엄령을 통해 유신 체제를 연장하려 했다. 1980년 봄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신군부 세력 퇴진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로 모든 대학들이 문을 닫고 일체 집회나 시위가 금지된 상황에서 전남대학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민주화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계엄군은 시위대와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등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1980년 5월 이후 당시 신군부는 광주에서 벌어졌던 민주화운동 사건 자체를 거론하지 못하도록 강압적으로 통제하거나 왜곡했고 이에 대항하는 언론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당시 일부 대학가에서만 해외 언론에서 보도한 기사와 사진, 동영상 등을 중심으로 참혹했던 실상을 알리려 노력했다.
5·18민주화운동은 이후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5·18 당시 폭력적 진압에 관한 법적 논란이 제기되었고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재평가가 시작되었으며 1997년 5월 법정기념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에도 여전히 제대로된 평가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각종 근거없는 왜곡과 날조로 덧칠한 거짓 정보들로 당시 운동의 순수성과 의미를 폄훼하고 모욕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한 발포 명령자 등 당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도 여전히 이를 가로막고 방해하는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라는 대장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위대한 국민적 민주화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벌어진 특정집단의 제한적 항거 수준으로 격하하려는 시도도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갈수록 5·18 민주화운동 자체를 기념하고 되새기는 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운동에 대한 혐오와 모욕이 점차 무관심과 외면으로 나타나는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만큼 반복되는 왜곡과 혐오를 근원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법제정이 시급하다.
아울러 이제 5·18민주화운동은 전 국민에게 다가가서 함께 의미를 나누고 그 날을 기념하는 진정한 의미의 국가기념일로 자리매김하는 일에 집중할 때이다. 당시의 참상을 알리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노력 못지않게 이 운동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과 미래 세대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에 보다 역점을 두어야 한다.
온 국민이 알 수 있도록 쉽게 요약한 5·18정신을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과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내재화하는 활동을 꾸준히 펼쳐야 한다. 매년 기념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행사보다는 조용히 지속적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따뜻하고 친근한 생활 속의 5·18민주화운동 사업과 활동이 요구된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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