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입력 2017.09.03. 13:05 수정 2017.09.04. 08:49 댓글 0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은 원래 법률적 규제이지만 비법률적 측면에서도 널리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법은 제2조1항에서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하여야 한다”고 명시해놓았다. 사회 공동체 생활에서 그 구성원들이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성의를 가지고 행동하라는 추상적인 법규범이다. 즉,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져버리는 방향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의 이행을 함으로써 상대방의 이익을 심하게 해쳐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신의칙은 로마법에서 기인했다. 당사자의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채권법 영역에서 체권의 행사 및 채무의 이행과 관련해 발생한 주요 법리다. 근대 사법에서는 프랑스 민법이 처음으로 규정하였으며 이 원칙은 권리남용의 법리와 공통된 점이 많다. 권리의 행사가 신의성실에 반하게 되면 권리의 남용이 되고, 의무의 이행이 신의성실에 어긋나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된다.

신의칙은 법적 규범 이전에 무리지어 사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고 선량한 풍속을 담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공의 질서가 무너지고 풍속이 어지러워지게 된다면 공동체 생활에 금이 가고 급기야는 붕괴돼 혼란과 무질서가 초래된다. 한편으로 신의나 성실의 구체적인내용은 때나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에 당대 사회의 상식이나 일반적 통념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권리남용금지의 원칙(민법 제2조2항)’,‘금반언의 원칙(제452조)’, ‘사정변경의 원칙(민법 제628조)’,‘(권리)실효의 원칙’등이 파생했다. 이들 파생원칙은 신의칙의 골자를 부정하기보다는 권리의 행사에 대한 법적 보호와 의무 이행의 법적 강제와 함께 공공성, 사회성을 강조한 때문이다.

최근 법원의 ‘기아차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 판결과 과 관련해 ‘신의성실의 원칙’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 내리고 있다. 판결의 내용을 두고 노조나 회사 쪽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사측은 볼멘 양상이 더욱 크다. 당초 사측은 “노사 합의로 이미 임금이 결정됐는데 이제와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적용해 달라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다”는 논리를 강조해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들은 근로기준법에 의하여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며 “원고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을 이제야 지급하는 것을 두고 비용이 추가적으로 지출된다는 점에만 주목해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관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향후 미칠 여파에 전전긍긍한 사측을 비롯한 산업계는 물론 노조의 바램도 채워주지 못한 이번 판결 뿐 아니라 그간의 유사한 사안에 대한 법원의 신의칙 판단이 서로 달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냐는 비난을 사 왔다. 같은 기업의 같은 사안임에도 1심과 2심의 신의칙 적용과 판단이 일관되게 유지되지 않은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같은 듯 다른 판단, ‘원칙없는 신의칙’으로 법적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김영태논설주간kytmd86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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