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팽목 기억 공간은 아이들과의 약속"

입력 2020.04.16. 15:25 수정 2020.04.16. 16:38 댓글 2개
마지막 남은 유가족 우재 아빠의 바람
진도 군민 삶 속에서 공존했던 6년
'참사의 공간' 흔적 남기고 싶지만
팽목 기록관 조성 외면하는 진도군
“내가 떠나면 아예 잊혀질까 두렵다"
민중미술 여류작가 김화순 화백이 우재 아빠 고영환씨를 그린 그림. 김 화백은 세월호를 그림으로 남기는 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광주시민상주모임 제공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아빠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곳에서 가장 가까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들의 명찰을 단 채 참배객을 맞으며 상주 역할을 해 온 지 6년째. 고통과 아픔이 오롯히 새겨진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아빠의 각오는 대답 없는 바닷바람 속에 더욱 굳어져만 간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8반 우재군의 아버지 고영환(52)씨는 지금은 진도항으로 이름바뀐 팽목항에 유일하게 남은 세월호 유가족이다.

세월호 참사 6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참사 기억식이 열린 가운데 단원고 2학년 8반 고우재 학생 아버지 고영환씨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그는 참사 4일만에 아들을 수습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자식을 찾지 못한 다른 유가족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남아 도왔다. 안산으로 되돌아가기도 했지만 세월호 이야기가 가볍게 거론되는 게 불편하기만 했다. 도저히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고 2014년 10월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분향소를 찾아오는 참배객들을 안내하고, 직접 밥을 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6년의 세월을 버틸 수 있는 건 진도군민들 덕분이었다. 그는 군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군민들의 일을 도우면서 가까워졌고 이제는 군민들이 직접 기른 채소를 가져와 해먹자고 찾아오는 등 마음의 외로움이 덜어진다.

안산의 남은 가족들이 "이제 돌아오라"고 설득해도 그는 "아직은 아니다"고 대답한다.

세월호가 인양되기까지 1천73일간 유가족들의 눈물이 땅에 스민 팽목항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 처지이기 때문.

유가족들이 거주하며 스무개도 넘게 빽빽했던 팽목항 컨테이너는 점점 줄며 현재는 식당, 회의실, 분향소, 성당 네개만 남았다. 진도항 배후지 건설 공사로 팽목항의 세월호 흔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진도군은 팽목항에서 1㎞ 떨어진 서망항에 국민안전체험관을 짓고 그 안에 세월호 기억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그는 "체험관은 재난에 대비한 경험을 쌓는 곳이지, 세월호를 추모하는 공간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더군다나 국민들에게 각인된 세월호 참사의 공간은 팽목항이지 서망항이 아니다"고 지적한다.

세월호 광주시민상주모임과 함께 2018년부터 팽목항에 기억 공간을 조성해 주길 바란다는 목소리를 진도군에 전했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시설물 건축 허가 권한이 있는 진도 군수에게 우리 바람을 전하고자 해도 만나주지를 않는다"며 "세월호 업무 담당자와 이야기하라고만 하는데 담당자가 무슨 권한이 있어서 해결이 되겠나"고 토로한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는 "우리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 뿐인데 선거 때마다 매도당한다"며 "괴롭다. 그렇지만 진실규명과 추모 공간이라는 최소한의 약속은 지키고자 한다. 나마저 떠나면 정말 잊혀질 것 아닌가"라고 호소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6주기인 16일,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 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기억식에서 추모사를 했다. "진실 규명이 6년을 넘길 줄 몰랐다. 세월이 지날 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며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무능한 아빠였던 내 자신을 탓하게 된다"고 괴로운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는 "공소시효가 1년 남았다. 잘못한 사람은 1년 지나면 자유로워지고 남은 가족들은 더 아파해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전후에 했던 약속이 있다.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

# 관련키워드
# 이건어때요?
댓글2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