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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에 라면·김 왜 주나"···격리자 지원 논란

입력 2020.04.05. 07:00 댓글 0개
1일부터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 의무화…지원 대상↑
모든 자가격리자에 일괄적 생필품 지급 문제 삼아
지자체 예산서 지급되는데…'정부지원' 오해하기도
"라면 필요없는데 세금 낭비…필요한 사람 못받아"
"갑자기 자가격리 시 생필품 준비 어렵다" 의견도
[서울=뉴시스]지방자치단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자가격리 조치된 사람들에게 지급한 생활필수품. 지원품은 즉석식품, 김, 라면 등으로 이뤄져 있다. (사진=독자 제공). 2020.04.03.

[서울=뉴시스] 김재환 기자 = "안 줘도 되는 사람에게 막 준다. 이 정부가 세금을 물처럼 낭비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A씨는 최근 온라인상에 이런 불만을 터뜨렸다. 해외에서 입국한 가족 중 한 사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자가격리 되면서 생활필수품이 지원되자,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런 지원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해외 유입을 막기 위해 지난 1일부터 모든 입국자에 대해 자가격리를 의무화 하고 있다. 자가격리자는 14일 동안 외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즉석식품, 라면, 세면도구 등으로 구성된 생활필수품을 동일하게 지급받는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원 품목과 가격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지자체 주민에게는 대체로 비슷한 물품이 제공된다.

특히 자가격리자에 대한 생활필수품 지원은 중앙 정부 예산에서 지출되는 게 아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5일 "(생활필수품은) 각 지자체장의 재량으로 지원되는 것"이라며 "지자체는 특별교부세와 재난관리기금으로 물품을 구입하며, 중앙 정부에서는 지원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온라인상에선 긴급 구호품 형태로 지급되는 자가격리자 지원책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생활필수품은 부유한 이들이 아니라 꼭 필요한 대상을 골라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누구든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면 일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6시 기준 국내 자가격리자는 3만2898명이다. 이 중 국내에서 발생한 자가격리자는 7979명, 해외 입국자는 2만4919명이다. 모든 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 의무화가 시행되기 전인 지난달 31일(2만780명)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자가격리 조치를 위반할 경우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따라서 생활필수품을 지원하는 것은 자가격리 이탈자를 막고 코로나19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자가격리자가 개인의 형편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지원받는 것을 문제삼는 의견도 있다. A씨는 자신이 이른바 '부촌'(富村)으로 불리는 한남동에 살아 라면이나 김 등 생활필수품이 필요하지 않은데,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고 지원해 못마땅하다는 입장이다.

충남 서산에 거주하고 있는 B(33)씨도 최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한 자가격리자의 게시글을 보고 분노를 표했다. B씨는 "자신이 자가격리 대상자라며 받은 물품 사진을 찍어 올렸다"라며 "그런데 (다른 글에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고 명품도 많았다. 누가 봐도 형편이 여유로운 사람이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대한적십자사 관계자가 지난달 12일 오전 서울 성동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구 지역 자가격리자들에게 보낼 긴급구호품을 옮기고 있다. 2020.03.12. dadazon@newsis.com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똑같이 지원하다보면 정부 예산이 부족해 독거노인 같은 사람에게는 지원하지 못 하는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형편이 어떻든 간에 재난 상황에서는 동등하게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지난달 해외여행을 다녀와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20대 C씨는 "형편이 여유로운 사람도 갑자기 자가격리를 하게 되면 미리 물품을 구비하지 못할 것 같아 지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생으로 지난달 말 자가격리된 엄주영(25)씨는 생활필수품 지원에 대해 "물질적인 부분만 있는 게 아닌, 꼼짝없이 격리돼야 하는 외롭고 속상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심리적인 부분이 컸다"고 표현했다.

엄씨는 "기대했던 것보다 넘치는 지원이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세금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도 이해가 간다"면서 "하지만 지원품을 받음으로써 내가 이렇게 철저히 자가격리하는 것을 정부에서도 알아주고 있고, 집에 가둔 게 아닌 최대한 지원하면서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의 개념이 아직 정착되지 않아 나타난 '인지 부조화' 중 하나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복지의 규모나 복지 정책에서 정부가 갖고 있던 포지션도 작았다"라며 "문화적으로나 인식적으로 아직 보편적 복지에 대해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사태가) 그런 상황에서의 첫 시험 무대다"면서 "처음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지 부조화가 있어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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