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어느 봄날의 성찰

입력 2020.03.30. 18:24 수정 2020.03.30. 20:10 댓글 0개
박지경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편집국장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다'는 뜻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3~4월의 꽃샘추위 같은 날씨를 비유해 쓰이지만, 어떤 처지나 상황이 때에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온 지구가 멈춰버린듯한 요즘, 쉽게 쓸수 있는 한자성어다.

사실 춘래불사춘은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1980년초 민주화의 기운이 싹 트던 시기, 이른바 '서울의 봄' 때 김종필씨가 당시의 정국을 표현한 말로 사용해 유명해졌다.

춘래불사춘은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왕소군이라는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 궁녀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다.

원제는 너무나 많은 궁녀를 일일이 볼 수가 없어서, 궁중화가 모연수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해 그 그림을 보고 후궁을 낙점했다고 한다. 그래서 궁녀들은 뇌물을 주면서 잘 그려주도록 간청했는데, 왕소군 만은 그러지 않아 모연수는 그녀 얼굴을 매우 추하게 그렸다. 이 때문에 황제는 왕소군을 곁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한나라는 북방 흉노족에게 화친정책을 펴는 중이었다. 이때 흉노의 왕 호한야(呼韓邪)가 한나라의 미녀로 왕비를 삼기를 청하자, 황제는 왕소군을 추녀로 잘못 알고 보내기로 했다.

왕소군이 흉노로 떠나는 날, 처음 왕소군을 실제 보게된 황제는 격노해 모연수를 죽였다고 한다. 졸지에 머나먼 이국으로 시집 가게된 그녀는 가는 길에 서글픈 심정을 비파로 연주했다. 구슬픈 소리와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날개짓을 멈추고 열을 지어 땅으로 내려앉았다고 해 만들어진 고사성어가 '낙안(落雁)' 이다.

후세 당나라 시인 동백규는 이 내용을 '왕소군의 원한(昭君怨)'이라는 시에서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이 아니구나" 라고 노래했다.

이렇게 알려진 춘래불사춘은 올 봄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개나리와 벚꽃을 맴도는 따스한 바람이 완연한 봄기운을 전하지만 우리 마음은 아직도 겨울에 갇혀있다. 모든 경제가 얼어붙은 것은 물론이고 마음 편하게 나들이조차 할 수 없는 형국이다. 하나 누구를 탓하겠는가.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과 과욕이 부른 또다른 참사가 아닌가 반성하는 수밖에. 박지경 정치부장 jkpark@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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