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89억 뇌물’과 ‘1억 기부’

입력 2017.08.29. 17:12 수정 2017.08.29. 17:50 댓글 0개

돈이란 게 참 묘하다. 쓰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천양지차다. 어떤 이는 89억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어떤 이는 1억으로 박수갈채를 받는다.

액수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썼느냐가 그 돈의 가치를 판가름짓는다. 이것이 뇌물과 기부의 극명한 차이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세기의 재판이 열렸다.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공판이었다.

재판부는 이날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특검이 이번 재판에서 제시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액수는 298억여원(약속 433억여원). 이 가운데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액수는 89억여원이었다.

선고 직후 허탈감에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이 부회장은 교도관의 안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재판부의 봐주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대 재벌 삼성그룹 총수는 그렇게 국민의 비난을 한몸에 받으며 호송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89억’의 저주였다.

같은 날 순천에 거주하고 있는 69살의 황경자씨가 순천시 연향동 전남도동부지역본부를 찾았다. 전남인재육성재단측에 장학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기부금 1억원. 그는 이날 평생 식당일을 해 모은 전 재산 1억원을 아낌없이 내놨다.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시민들 안전을 위해 고생하는 소방대원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재벌도 아닌 그렇다고 갑부도 아닌 15평 남짓 작은 아파트를 얻어 생활하던 평범한 서민의 기부였기에 의미는 더했다.

지난 2011년부터 모 라디오방송을 통해 매주 1만원씩 기부를 실천해 온 사실도 새롭게 알려졌다. 가슴뭉클한 감동이었다. 기부를 마치고 환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의 모습에 소리없는 박수가 이어졌다.‘1억’의 기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사흘 뒤인 지난 28일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장성의 한 저수지에서 딸 대학등록금 500만원을 구하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모녀의 사체가 물속에서 건져올려진 승용차에서 발견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모녀는 보증금 없이 50만원짜리 아파트에서 생활해 온것으로 파악됐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냈을 엄마와 그 딸에게 수백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은 얼마나 버거웠을까. 경찰이 또다른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는만큼 지켜볼 일이다.

가슴 아프지만 수십억을 뇌물로 쓰는 이들에겐 푼돈조차 되지 않을 500만원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극단적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아둥바둥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게 현실이다.

이 부회장의 ‘89억’보다 황경자씨의 ‘1억’의 가치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윤승한기자 ysh6873@hanmail.net 지역사회부장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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