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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월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
입력 2017.08.29. 13:14 수정 2017.12.11. 13:12 댓글 0개진실은 거짓을 이긴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영화 (이하 ‘부정’)와 는 진실에 관한 영화다. 은 엄연한 진실을 부정하는 거짓에 맞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를, 는 고립된 진실을 어떻게 외부로 알릴 것인가를 보여준다.
는 신군부의 광주학살을 세계로 알린 독일 기자와 동행한 운전사의 모험을 중심으로 진실을 알리려는 시민들의 가상한 노력을 그리고 있다. 정작 완전한 진실 규명을 기대하는 사람에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학살의 책임자나 진실의 근원을 파헤친 것도 아닌 현상 위주이고, 자동차 추격 장면도 사실성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다큐 아닌 영화라는 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광주 학살을 모르는 자에겐 진실을 향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아는 자에겐 진실의 기록들이 쉽게 얻어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준 영화다.
은 나찌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관한 법정 투쟁을 다룬 영화다. 반유대주의자이며 인종차별주의자인 데이빗 어빙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 그가 자신을 비판한 유대인 교수 데보라 립스타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이 법적 테크닉을 요구하는 소송으로 바뀌어 버렸다. 영국 법에 따르면 고소를 받은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가 홀로코스트의 실재를 입증해야 했다. 또한 어빙이 실재를 알고도 고의로 부정한 점이 입증되어야 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의 존재 여부가 법적 판단으로 결정될 수는 없겠지만, 명예훼손사건을 통해서 홀로코스트의 실재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이다. 소송을 통해 비극을 생생하게 알리고 싶었던 데보라 교수와 피해 생존자들은 이 상황에서 분노를 금치 못하며 진실을 밝힐 열의에 차있다. 그런데 변호인들은 교수를 비롯하여 피해자에게 발언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신나찌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고 그들을 선동하는 어빙에게 먹잇감을 주고 조롱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진실을 논쟁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명백한 사실을 갖고 우기는 사람을 보면 보통사람은 흥분과 분노에 말도 잘 안 나온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라 해도, 이를 누군가 거짓이라 주장하면,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거짓을 주장하는 사람은 논쟁을 통해 진실을 진위불명의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사실의 문제를 의견의 문제인 것처럼 바꿔버리기도 한다. 은 진실이란 것이 감정만으로 밝혀질 수 없고, 오히려 냉철한 이성과 집요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어빙이 패소한 후에도 방송에 출연하여 마치 자신이 승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모습이다. 어빙의 홀로코스트 부정에는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가 작동하고 있었다. 거짓을 주장하는 사람은 진실이 무엇인지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이익과 신념체계를 위해 진실을 부정하고 거짓을 주장한 것이다. 최근 광주 학살을 둘러싸고 북한 개입설 등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유포하고 이에 박수치는 사람들이 있다. 알고도 고의로 진실을 부정하거나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이들은 줄곧 진실의 문제를 이념이나 지역의 문제로 바꿔버리려 한다.
은 지난 5월 18일에 방영된 제이티비씨 뉴스룸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는 최근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 두 영화 모두 5·18 학살의 진실과 거짓을 생각하게 한다.
광주의 항쟁에서 상징적인 방화가 있었다. 도심에 있던 엠비씨와 세무서 건물의 방화였다. 첫째 방화는 에서 나왔듯이 진실을 외면하는 언론에 항의한 것이었고, 둘째 방화는 세금을 내어 국민을 지키도록 했건만 군대가 국민을 죽이는 데 항의한 것이었다. 당시 제 역할을 못한 언론과 국가폭력을 자행한 군대가 이제는 온전한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야 한다. 특히 정치군인들에 농락당해 국민을 향해 총질을 한 군이 스스로 명예를 회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최근 제이티비씨가 보도한 공군 조종사의 증언은 고무적이었다.
진실은 은폐, 통제, 왜곡, 거짓과 맞서야 하는 것 외에 침묵과도 싸워야 한다. 아직도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은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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