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죽으면 빈 손인데… 기부하고 편히 가면 좋지요”

입력 2017.08.27. 15:25 수정 2017.08.28. 11:48 댓글 2개
순천 거주 폐암말기 황경자씨 전 재산 기부

소방대원 헌신·열악한 근무환경 보고 결심

매주 라디오에 기부 ‘나누는 삶’ 한 평생

“소방공무원 자녀 위해 써달라” 1억원 전달

“나는 곧 하늘나라에 갈 사람인데 이왕이면 고생하는 소방관들한테 기부하고 마음 편하게 가면 좋지요. 전 재산 뜻 깊게 사용한 것 같아 아주 뿌듯합니다.”

쉬다 못해 심하게 갈라져버린 목소리의 황경자(69)씨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얼마 전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치료마저도 받지 못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인생의 마지막 장을 뜻 깊게 남기고 싶다며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열악한 환경에서 책임감 있게 근무하는 소방공무원을 위해 써달라” 평생을 식당에서 일해 모은 전 재산 1억 원을 선뜻 내놓은 것.

지난 25일 순천시 연향동 전남도동부지역본부를 찾아 전남인재육성재단 측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그녀의 표정에선 여유와 행복함이 넘쳤다.

평소 신문기사를 통해 국민의 안전을 위해 희생하는 소방공무원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근무의욕을 북돋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생각에 순천소방서를 찾아 장학금 전달 의사를 밝혔다.

순천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후 19살이 되던 해 상경해 30여년을 식당일로 생계를 꾸렸다는 그는 7년 전 뿌리를 찾아 순천으로 돌아왔다.

매곡동의 15평 남짓 한 작은 아파트를 얻어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던 그녀는 지난 5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자신이 폐암 말기라는 것. 이미 암세포가 온 몸으로 퍼질 대로 퍼져 치료 역시 쉽지 않다는 의료진의 말을 전해들었다.

하지만 황경자씨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퇴장을 결심한 것. 그렇게 그녀는 순천 119소방대원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탁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의 ‘나누는 삶’은 새삼스럽지 않았다. 이미 지난 2011년부터 ‘지금은 라디오시대’라는 MBC라디오를 통해 매주 1만원씩을 꾸준히 기부하는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정을 베풀어 오고 있었다.

황경자씨는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소방대원들이 아주 열악한 장비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너무나 가슴아팠다”며 “내가 이왕에 하늘나라로 갈 바에 우리 소방대원들의 헌신에 보답하고 편히 가자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을 일해 번 돈을 뜻 깊게 쓸 수 있어 정말 뿌듯하다”며 “그들을 부모로 두고 있는 자녀들이 사회의 훌륭한 일꾼으로 자랄 수 있도록 장학금으로 사용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황경자씨로부터 장학금을 전달받은 순천소방서 측은 “몸도 불편하신 분이 남을 도울 생각을 했던 그 마음에 정말 감동 받았다”며 “당장의 소방공무원들의 장비를 교체하기 보다는 황경자 선생님의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장학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남인재육성재단은 황 씨가 기부한 1억 원을 장학기금으로 적립해 매년 발생하는 이자를 ‘황경자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순천소방서 소방공무원 자녀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순천=김학선기자 balaboda2@hanmail.net

# 이건어때요?
댓글2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