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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논란④] '도덕적 설득'

입력 2020.02.24. 06:14 댓글 0개
금감원 제재 위주 검사에 시장 반발
도덕적 설득, 양해각서, 이사회 교체 등 다양한 제재 기법 필요
[서울=뉴시스]이윤청 기자 =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중회의실에서 열린 거시경제 금융회의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2020.02.14.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은비 기자 = "직진(제재)만이 답이 아닙니다. 그냥 제재하는 것은 쉽죠. 그냥 법대로 하면 되니까요. 어려운 것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제재하느냐입니다. 검사는 `종합 예술'과 같은 겁니다. (DLF 사태로) 은행장은 중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죠. 그러나 금융당국이 이렇게까지 마찰을 일으킨 것은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죠. 과연 미국과 영국 등 해외 금융당국이었으면 이렇게 했을 까요"

최근 만난 전 금융감독원 검사 담당 임원의 말이다. 사실 간접적인 제재가 화두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 전 금감원 임원 역시 자신도 퇴임하고서야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닫게 됐다고 인정했다. 회장과 행장이 맞붙은 신한사태와 금융당국까지 연루된 KB사태가 터지면서 제재만이 정답이 아님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금융당국과 이사회간 정례 접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대다수 금융지주는 주인이 없는 회사다. 따라서 이사회가 주인과 다름없다. 그러나 예전 이사회는 CEO 거수기에 그쳤다. 따라서 이사회를 정상화시키고 그들과 금융당국이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상시 감시'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해졌다. 이런 기법은 미국에선 아주 일반화된 방법이라고 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2018년 '유령계좌' 파문을 일으킨 웰스파고에 대해 자산 동결명령을 내리면서 4명의 이사진을 아예 교체해버렸다. 이런 초강력 조치가 가능했던 것은 연준이 이사회와 계속해서 접촉해왔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문제를 사전에 인지하고 이사회에 자체적인 개선과 재발 방지책을 요구했었는데도, 같은 방식의 금융사고가 터지자 초강력 제재를 내놨던 것이다. 이사회와 사전 조율과 경고가 있었던 만큼 여기에는 어떤 마찰이나 반발도 없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는 이사회가 최고의사결정기구인데, 이사회와 잘 소통하면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면서 제재 효과도 낼 수 있다"며 "일종의 '도덕적 설득'으로 선진국 감독당국을 보면 다양한 시정 조치권을 가지고 있고 비공식적 조치도 다양하다. 물론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기관제재를 대신해 업무협약(MOU), 확약서 등을 체결할 수 있는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을 지난 2016년 3월 마련했다. 하지만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활용되지 않아 지난해 12월에야 첫 사례가 나왔다. 금감원은 그 해 8월 금융감독 혁신방안의 일환으로 관련 기준을 구체화하고 제도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금융위-금감원 이견, 제재의 미숙함

DLF사태를 전후로 금융위와 금감원간 관계 정립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양기관은 제재에 대해 "이견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를 뻔한 거짓말에 가까운 '립 서비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DLF 제재안을 둘러싸고 금융위와 금감원간 뚜렷한 입장 차이는 존재했다. 금융위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금융지주의 지배구조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우려했다. 시장이 충분히 잘못을 인지한 상황에서 굳이 CEO에 대한 중징계로 지배구조까지 흔들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에서다. 또한 법적 소송 가능성 대해서도 우려했다. 최근 경제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을 감안할 때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현안도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금감원은 처음부터 중징계를 원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을 주겠다"고 까지 했다. 소비자보호를 최우선 목표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흔히 신체에 비유하면 금융위는 머리, 금감원은 몸에 비유된다. 금융위가 금융정책을 정하고 지휘·감독한다면 금감원은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갈등이 생겼을 때 정책 잘못인지 집행이 잘못인지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공방이 벌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행정기관과 무자본특수법인이라는 차이로 조직 문화가 이질적인 것도 특징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금융위와 금감원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감원 금융감독자문위원장을 맡은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한국은행이 반민·반관, 특수법인인 것처럼 이에 준해서 금융감독 중립성을 제고하는 쪽으로 조직이 통합돼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금융감독당국이 부문별 조직이었다. 은행·증권·보험 부문별 중간감독기구가 있었고, 이들 기구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재정경제원이 존재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관치금융 철폐 움직임에 따라 통합 움직임이 일었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가 새롭게 생겨났지만, 재산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금융감독권을 민간에 맡길 수 없다는 의견에 따라 위원회 보조기구인 행정위원회에 재경원 관료 10여명이 참여했다. 이 위원회가 지금의 금융위 전신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현재 금융위 모습이 됐다.

김 교수는 "금융위와 금감원을 따로 두는게 맞다고 본다면 한은도 금융통화위원회는 정부조직으로 가야 한다"며 "조직이 분리된 게 갈등의 원천인데, 우리나라 금융감독기구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20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권한과 기능을 재배분하는 논의라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며 "정치 논리랑 섞이면 분별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지고 진흙탕 싸움이 된다"며 "바람직한 방향을 논의해보자고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 토양이 아직 그 정도로 성숙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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