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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난이도 조절 실패' 국가시험···정부가 배상할까?

입력 2020.02.22. 09:01 댓글 0개
"불수능으로 피해"…법원에서 패소
출제 재량권 벗어난 위법 증명해야
"재량권 상대적…배상받기 힘들 듯"

[서울=뉴시스] 옥성구 기자 = 대학수학능력 시험이나 공인중개사 시험과 같이 국가가 시행 및 관리를 담당하는 시험에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을 경우 정부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할까.

핵심은 과연 난이도 조절 실패에 있어서 출제권자의 재량권을 벗어나는 위법이 있었는지 여부다. 만약 출제 재량권을 벗어났다면 정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부는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2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89단독 홍주현 판사는 최근 수험생 A씨와 학부모 B씨 등 10명이 정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는 2018년 11월15일 '불수능'으로 유명했던 2019학년도 수능을 치른 응시생이다. B씨 등은 당시 수능을 치른 응시생의 학부모들이다. 2019학년도 수능은 이의신청 건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문제가 어려워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수능 채점 브리핑에 앞서 "예측과 실제 결과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난이도 조절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했다.

A씨 등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넘어 출제한 행위는 공교육정상화법을 위반한 위법"이라며 "난이도 조절 실패 등 법령을 위반한 직무행위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총 3000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하지만 홍 판사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직원들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위반해 고등학교 교육과정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 시험 문제를 출제한 것이 아니라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홍 판사는 "검토위원 대부분 교직경력이 많은 현직 교사들로 구성됐다"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개념과 원리 등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수능시험 문항의 약 70% 정도를 EBS 교재와 연계해 출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문항의 난이도가 높다는 사정만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논란이 됐던 문항들이 고등학교 교육과정 내 출제였다는 점을 교재 등을 통해 제시했다.

또 "A씨 등은 중학교 내용이 출제됐으므로 이 역시 위배된다고 주장하나 수학 교과 특성상 단계적 학습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다"며 "이 사건 문항들에 대한 정답의 결정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공무원 내지 시험출제 위원의 고의·과실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주의의무를 위반해 정당성을 상실하고, 이로 인해 손해의 전보 책임을 국가에 부담시켜야 할 실질적 이유가 인정돼야 한다"고 설시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005년에도 공인중개사 시험에서 불합격한 응시생들이 "시험 기간 내 풀기 어려운 문제들만 출제돼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정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인욱)는 "어떤 시험에 대한 난이도는 출제위원 성향, 응시자 학력에 따라 달라지는 등 상대적·추상적이어서 조절이 용이하지 않다"며 "이 사건 시험문제 출제가 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라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국가가 시행 및 관리하는 시험에서 난이도 조절 실패에 따른 국가배상 책임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출제권자의 재량을 벗어난 위법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주된 평가다.

민사 소송을 전담하는 한 변호사는 "재량권은 상대적인 것이고, 난이도에 대한 체감은 개인마다 주관적일 것"이라며 "악의적으로 지나치게 어렵게 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은 이상 정부에 배상 책임을 묻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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