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실좋은 노부부 ‘호호(好好)’

입력 2002.10.19. 09:41 댓글 0개
넓은 벌판에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곧 벌판은 텅 빌 테고 찬바람 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며 쉴 터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벌판을 말없이 지키는 이가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남도의 넓은 벌판을 지키며 풍찬 노숙했던 장승이다. 장승은 우리나라 전역에 흩어져 있지만 남도의 넓은 벌판에 있는 석장승은 각별하다. 그 중 백미는 나주에 있는 불회사 장승과 운흥사 장승인데 오늘은 운흥사 장승을 찾아가도록 하자. 운흥사지는 불회사 건너편에 있는 절인데 지금은 폐사 되었다. 화순 운주사를 지나 818번 지방도로를 타고 다도면사무소 쪽으로 가다 암정리 입구에서 좌회전하여 20여분을 구불구불 달리면 길이 끝나는 곳에 운흥사지가 있다. 운흥사 못 미친 곳에서 문득 낯익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마중을 나와 있다. 운흥사는 신라 헌강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조선후기 나주사람이며 차(茶)문화의 부흥조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15세 때 처음 머리를 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다도인들 사이에는 차 문화의 성지로 알려져 순례를 다녀가기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과 함께 폐사지로 변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돌장승들은 마냥 좋은 웃음뿐이다. 아무리 콘크리트 같이 굳었던 마음이라도 이들의 웃음 앞에서는 굳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릴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금실좋게 백년해로한 웃음이다. 풍성한 저 가을 들판 같은 웃음이다. 오른편이 할머니 장승인데 윗입술이나 턱에는 온통 자글자글한 주름투성이고 우스워도 소리 내어 웃지 못하고 끽끽 속웃음을 짓는 모양이 재미있게 표현되었다. 왼편의 할아버지 장승은 수문장 역할이지만 험악하기보다는 얌전하게 웃으며 쌍꺼풀까지 애교있게 표현해 놓았다.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