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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식을 거부한다"···설 밥상에 등 돌리는 사람들

입력 2020.01.25. 05:01 댓글 0개
"환경·동물권에 관심갖고 채식 실천"
"동물 종 차별·인간중심주의 없애야"
"명절마다 친지들 걱정·간섭 이어져"
"종가집 맏며느리 고기요리 하기도"
"채식으로 명절음식? 충분히 가능해"
[서울=뉴시스]채식 떡국과 콩불고기. (사진=오승희씨 제공)

[서울=뉴시스] 조인우 이기상 기자 = 고기 육수를 바탕으로 끓인 따끈한 떡국에 갈비찜, 잘게 썬 고기가 필수인 잡채와 고기·채소를 번갈아 끼워 구운 산적, 날고기를 달걀옷을 입혀 부친 육전 등 상다리가 휘게 차려진 설날 차림. 하지만 이 '화려한 밥상'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작게는 고기를, 더 나아가 계란과 생선까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들이다. 최근 뉴시스가 만난 이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먹을 권리가 동물의 살 권리보다 중요한가요?"

◇"이전엔 고기를 엄청 좋아했어요"

경기도에 사는 최은율(25)씨는 환경과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다가 채식을 시작하게 됐다. 3년 전 쯤 부터다.

최씨는 계란과 우유, 생선까지는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분류된다. 고기를 먹지 않는데, 고기의 형태를 띤 대체육류도 즐기지 않는다.

"콩고기 같은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식품은 먹지 않으려고 해요. 요즘은 채식인구가 많이 늘어서 관련 식품도 많이 나왔거든요. 솔직히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식품은 맛이 없었는데, 지금은 맛있더라고요. 명절엔 해물 동그랑땡이나 채식만두 등을 먹으면 되고요."

[서울=뉴시스]채식 잡채. (사진=오승희씨 제공)

서울대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모임'을 이끄는 이유나(23)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콩고기로 고기의 맛을 느끼고 싶을 만큼 육식이 생각나진 않아요. 콩고기가 육식의 궁극적인 대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고기 형태를 모방한 것을 만드는 자체가 동물을 식용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닐까요?"

이씨가 채식을 한 지는 2년 남짓 됐다. "고기를 엄청 좋아하던 사람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씨가 채식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돼지의 도축 과정을 알게 되면서다.

"친한 친구의 권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갑자기 일주일만 해볼까 싶어서 비건 카페에 갔는데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라는 책을 읽게 됐어요. 큰 충격을 받았죠."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어떻게 안 먹냐고요?"

채식인을 대하는 비(非)채식인의 반응은 전형적이다. 가족과 친지, 지인들은 걱정을 빙자해 간섭과 훈계를 늘어놓는다. '고기를 안 먹으면 뭘 먹냐', '단백질은 어떻게 섭취하냐', '동물은 불쌍하고 식물은 안 불쌍하냐' 등이 단골 멘트다.

2013년부터 건강 문제로 채식을 시작한 김지은(28)씨는 처음엔 명절에 고향 내려가기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사진=헬로네이쳐 제공)

김씨는 "친척 분들이 나쁜 의도로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냥 궁금하면 물어볼 순 있는데 그런 관심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명절에 내려가면 며칠 간 하루 세끼를 계속 같이 먹어야 하잖아요. 매 끼니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게 상당한 스트레스였거든요. 할머니는 손녀 생각하는 마음이시겠지만, 항상 고기를 권하세요. 그걸 유연하게 거절하기도 어렵고요."

이화여자대학교 비거니즘 지향 동아리 '솔찬'에 소속된 오승희(22)씨는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다. 승희씨는 "채식에 대해 알려진 대부분의 소문과 통념에는 틀린 이야기가 많다"며 "채식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들을 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단백질 섭취가 부족할 것이라는 말에는 채식으로도 충분히 모든 필수아미노산의 섭취가 가능하고, 오히려 현대인이 많이 걸리는 암 등의 질병은 동물성 단백질의 과다섭취로 인한 영양과잉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려요."

우리나라 문화상 아직은 '명절 상차림의 최전선'인 며느리 역할을 수행하면서 채식인 자아가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50대 후반의 중년 여성 채식주의자 유경숙(가명)씨가 그런 경우다. 유씨는 불교에 입문하면서 살생을 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어 수십년 간 채식을 지속했다.

다만 종가집 맏며느리로서 명절 만은 예외였다. 먹지 않아도 요리는 해야 했다.

[서울=뉴시스] 김병문 기자 = 동물해방물결이 지난해 5월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육식을 반대하고 채식을 제안하는 '탈육식이 미래다' 캠페인을 하고 있다. 2019.05.02. dadazon@newsis.com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참았어요. 제사는 하루니까, 참는다는 생각으로요. 남들은 잘 먹는데 혼자 그러기도 눈치가 보였고요. 상에 고기와 산적은 필수로 올리되, 내가 잡은 건 아니니까 괜찮다고 되뇌이며 요리를 했죠."

◇"고기 말고도 맛있는 게 많거든요."

승희씨는 "명절 음식은 얼마든지 고기를 빼고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산적에는 햄과 맛살을 빼고 곤약과 버섯을 더하고, 잡채에는 고기 대신 유부나 콩단백을 넣는 식이다. 달걀옷을 입히는 대신 밀가루나 병아리콩 가루만 이용하면 반죽도 만들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명절 식탁에서 채식 음식을 찾아보기 어렵죠. 그렇지만 동물권과 환경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장되면서 채식인구가 늘고, 점차 채식 명절 음식이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채식 7년차 베테랑 김수민(가명)씨는 "요즘은 친구들과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저도 친구들과 모여 채식 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먹고 놀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유나씨는 "저는 제 먹을 권리를 보장받고 싶은 게 아닌데 사람들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못 먹는' 채식인인 저만 보는 것 같아요. 그것보단 동물들의 현실이 더 주목을 받았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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