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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듣다]'한류'에 편승했던 사업, 모래성이었다

입력 2020.01.23. 09:07 댓글 0개
일본 상대 구매대행업으로 사업 시작
한류에 힘 입어 '승승장구'...식품업까지 진출
방사능 사고-대통령 독도방문 등 악재에 매출 격감
"상품자체 품질로 승부했어야했다"
[서울=뉴시스] 김호진 대표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2012년 7월 만능양념장 '백작'이라는 제품을 만들었지만, 한일 관계 악화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표주연 기자 = "한류에 너무 편승해서 사업을 했다. 한류는 양날의 칼이더라. 한류가 아니라 상품자체로 승부를 볼 생각을 했어야 했다."

김호진(47) 대표는 2003년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사업을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당시는 드라마 겨울연가가 인기를 끌면서 제1의 한류붐이 일본을 휩쓸고 있을 때다.

김 대표는 '엔조이한국'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구매 대행업을 시작했다. 시작은 유아용품, 기저귀였다. 일본 귀저귀가 품질이 상당히 좋은데도 가격은 반값에 불과한 점에서 착안했다. 기저귀 구매 대행은 생각보다 잘됐다. 롯데, 신세계 대형몰과 온라인에 공급을 하면서 약 2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아르바이트로 고용한 인원이 10명이나 됐다. 이후 2007년 일본에 현지법인 KJ글로벌를 만들고 사업을 본격화했다.

그러다 첫번째 불운이 찾아왔다. 2011년 일본에서 사고가 터졌다. 후쿠시마 방사능 사고였다. 방사능 사고가 터진 일본 제품을 찾는 소비자는 없었다. 게다가 취급 품목은 유아용품이었다.

매출이 격감하자 김 대표는 반대로 일본에 우리 물건을 팔 생각을 했다. 역시 한류에 힘 입어 이번에는 식품쪽에 손을 댔다. 당시 카라, 소녀시대 등을 중심으로 K팝 붐이 불던 시기였다. 미쓰이그룹 식품 유통사는 '한국 식품이 일본시장을 주름잡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미 일본에서는 막걸리, 홍초 등 한국 식품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2012년 7월 만능양념장 '백작'이라는 제품을 만들었다. 삼양사 제품이었던 '백작'을 수출용으로 OEM으로 리프로듀스한 제품이다. 일본 기업과 시장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도쿄 한국식품 코너에서 메인부스로 초청 받았다. 미쓰이그룹 거래처인 일본 1위 소매유통사 세븐아이홀딩스 식품 본부장이 와서 당장 '백작'을 도입하자고 요청할 정도였다.

[서울=뉴시스] 김호진 대표(오른쪽)이 일본에서 사업 발표를 하고 있다.

첫 발주물량은 컨테이너 2대였다. 물건 값만 3억원 어치였다. 이미 '백작'을 개발하고 제조하는데 10억원 정도를 쏟아부은 상태였다. 김 대표는 이 때에 대해 "조금씩 자주 보낼 생각을 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컨테이너 두 대 분량의 물건을 쌓아놓고 발주를 기다리는데 또 사고가 터졌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을 맞아 독도를 방문했다.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백작'을 만들어 발주를 받고 컨테이너에 쌓아둔 게 2012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건 다음달인 8월15일이었다. 불과 한달 사이에 사고가 터졌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미쓰이그룹측은 일본내 여론이 심상치 않자 발주를 차일피일 미뤘고, 그 사이 2~3달이 훌쩍 지났다.

심지어 김 대표는 또 다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식품의 경우 제조일로부터 4개월이 지난 제품은 납품을 안 받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됐다. 일본측은 이미 컨테이너에 쌓아둔 채 제조일로부터 3개월 이상이 지난 제품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김 대표는 눈물을 머금고 새로 물건을 만들어 최소 수량인 5000만원어치를 일본으로 보냈다. 애초에 보내려고 했던 물건의 5분의 1 분량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또 컨테이너에 쌓아둔 제품은 '복덩이'에서 '짐덩이'가 됐고, 야심작이었던 '백작'은 떨이시장에 넘겨졌다. 한 개에 3000원에 팔려고 했던 '백작'은 결국 100원에 팔렸다. 창고임대료와 투자 등이 감당이 안됐기 때문에 벌인 고육지책이었다.

김 대표는 "너무 한류에 의존했고, 아이템도 그런 쪽으로 찾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 한류는 거기에 플러스 알파일 뿐이다. 국제정세에 좌지우지되기보다 우리 브랜드의 성능, 가능성으로 먼저 승부를 봤어야한다"고 토로했다.

식품 사업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것도 문제였다. 제조일로부터 4개월이 지난 식품 제품을 납품할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된 점은 기본에 대한 문제였다. 김 대표는 "너무 식품에 대한 조사없이 사업을 했다"며 "무역을 꾸준히 헸는데도 불구하고 투자하는 부분을 가볍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김호진 대표가 일본에 수출중인 기능성 올인원에센스 화장품 '페프로'.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제정세에 취약한 국제 무역업은 두번째 실패를 안겨줬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 실패를 맛본 뒤 중국-한국-일본을 잇는 삼각무역을 생각했다. 중국에 일본 기저귀를 파는 사업이었다. 이것도 초반에 꽤 반응이 좋았다. 매출이 80억원까지 치솟고, 현금으로 1억원씩 들고 다닐 정도가 됐다. 식품제조로 생긴 빚 8억원 중 7억원 정도를 한중일 무역으로 갚을 수 있었다.한중일 삼각무역은 2014년~2015년까지 수익이 유지됐다. 또 사고가 터졌다. 이번엔 사드 유탄이다. 2017년 2월이다.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반한 감정이 치솟자 납품처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김 대표는 "사드 사태 이후 수익도 나지 않고 일도 잘 되지 않았다"며 "수익이 나지 않자 신용보증기급에서 대출 연장도 해주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결국 식품과 귀저귀 사업으로 벌인 유통사업은 2018년 초 폐업했다.

김 대표는 현재 3번째 사업을 진행중이다. 10년이상 운영한 커뮤니티 '엔조이한국'이 다시 단초가 됐다. 이 커뮤니티에서 알게된 일본 지인들이 한국 화장품을 선호하고, 한국을 '미의 왕국'으로 부르는 것에 착안했다. 일본인들은 한국을 뷰티산업의 선진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번엔 한국색을 빼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과거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이다. 제품 디자인과 상표 등에서 모두 한국색을 빼고, 일단 품질로 승부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김 대표는 "현재 이 제품으로 1년에 2억원 정도 매출 올리고 있다"면서 " 일본최대화장품포털 앳코스메에서 랭킹상위를 하는 등 아직 미미하지만 흐름은 괜찮다"고 내다봤다.

초보 창업자에게 조언해줄 이야기가 있으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실패는 가능한 해봐라. 다만 크지 않게 해봐라.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정부도 재도전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고 있으니, 최대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며 "재창업자의 성공률은 일반창업자의 두배라고 하더라. 실패는 다시 일어날 밑거름이 되어 성공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절대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며 웃었다.

※'실패를 듣다'=성공에 이르기까지 힘들었던 수많은 실패의 고백을 털어놓는 것이다. 그냥 실패가 아니라 값진 실패, 유의미한 실패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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