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기생충' '리키', 그리고 '와이키키브라더스'

입력 2020.01.13. 18:09 수정 2020.01.13. 19:36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가슴이 먹먹했다.

다른 한편 '역시 임순례 감독이다'싶은, 멋진 감독을 배출한 우리사회에 작은 위안을 얻기도 했다.

지난주 (사)시민자유대학(학장 조윤호) 음악 동아리 '악담'이 1월 공부과제로 삼은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브라더스'가 던진 상념이다.

이 영화는 신자본주의가 횡행하기 전인 2001년에 개봉됐음에도 인간이라는 한 우주를 무참히 짓밟는 자본의 덫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독의 시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인의 무력함을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해볼 수 없는 자본의 거대한 벽과 체제를 생각케 한다. 청소년시절부터 꿈이었고 인생의 전부였던 음악을 좇아 밴드에서 연주하던 주인공이 시대의 변화에 밀려 팀원들을 잃고 축제장을 전전하는,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꿈을 내던져버리지 않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개인을 짓밟는 자본의 횡포에도 결코 좌절할 수 없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인간의 희망이 남아있다.

다른 한편 광주극장에서 상영중인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와 한국 영화사를 뒤 흔들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자동연상 됐다.

'리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미안한게 아니라 '가족들을 위해 죽기살기로 일한 죄'를 통해 자본주의의 잔인함과 이 제도의 민낯을 드러낸다. 주인공 리치가 택배회사와 맺는 '0시간 계약'(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은 우리에게도 남 일이 아니다. 도급제 와 노동착취와 자본의 횡포, 그 속에서 가진 것 없는 서민층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해도 자신의 처지를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런 처참한 현실에도 수많은 리키들은 목숨을 걸고 가족을 위해 내달린다. 그 암담한 현실에서 관객, 당신의 선택은 어디로 가야하나.

'기생충'의 국제무대 수상을 앞두고 대한민국이 들썩인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최초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각종 국제 영화제서 90개가 넘는 상을 휩쓸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미국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어서 올해도 '기생충' 여진은 계속될 것 같다.

해외서 날아든 소식은 언제 들어도 반갑고 가슴 한켠을 설레게 한다. 다른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기생충'을 소비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외려 영화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듯 하다.

한국 최초니, 한류니 하는 수사에 집착하는 듯 해서다. 국제사회의 평가가 한국사회에 어떻게 내재화되느냐가 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만들며 선보였던 표준근로계약제를 비롯해 이 영화가 전하는 한국사회의 '끔찍한' 양극화에 대해 책임 있는 당사자들의 성찰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앞다퉈 한국 최초 등을 찬양할 뿐이다. 대통령 마저도 지난해 칸의 황금종려상 소식에 수상을 축하할 뿐 '기생충'이 전하는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상처와 치유불가능해 보이는 아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일반인보다 먼저 사회의 병폐를 알아채고 대중에게 경고음을 전하는 이들이 예술인이다. 그들의 경고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성숙한 사회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우아함을 논할 일이 아니다. 현대라는 사막이 멸망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 예술인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일하는 죄'를 범하는 숱한 리키들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싶다.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국장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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