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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격려의 언어
입력 2020.01.13. 17:27 수정 2020.01.13. 17:29 댓글 0개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에 대해 요즘 고민이 든다. 여러분의 학교는 어떤가?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구성원에 대한 존중은 개인 상호간의 태도의 문제이면서 학교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내가 동료 교사를 존중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라는 조직체가 구성원을 존중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학교자치조례에 근거한 학교 교직원회의 담당자를 대상으로 교육청이 연수를 실시했다. 그 연수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은 학교들이 이 교직원회를 구성하여야 하는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학교의 부장들로 이루어진 회의에서 중요한 사안들이 심의되고 결정되는 일을 당연시하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회의를 자주 열고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이 분분한 사안에 대해서 숙고의 시간을 갖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태도는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이로서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장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러분의 학교는 어떤가? 민주적 운영은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잘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관리자로 표현되는 학교의 장이 자신의 직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교사들과 더불어 학생 교육 중심의 학교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그래서 학생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학교의 모습에 대해서 부정하고자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좋은 관리자는 어떻게 등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최근 몇 년 사립학교 중 운영에 문제가 드러난 학교에 파견이란 형태로 관리자를 외부 인물을 앉히는 방식이나 외부 인물로만 심사의 과정을 거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여러 고민 속에서 나온 방안이라 할지라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방식을 선택한 밑바닥엔 혹여 그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교사들을 다 문제의 집단으로 바라보거나 교내의 문제를 외면하고 묵인한 집단으로 바라보고 개혁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이식될 수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는 그 구성원을 대상화하거나 수동에 빠지지 않도록 조직의 주인으로 잘 세우는 데 있고 그것이 궁극적 목적이 아닌가? 문제는 학교 관리자를 내부 인물에서 찾을 것인지 외부 인물에서 찾을 것인지가 아니다. 학교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관리자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야기해보고 그 의견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것이 먼저이며 그 과정을 통해 적절한 인물을 찾아가보는 것. 그 기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아가 보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를 전체 총투표로 확인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옳거나 좋다고 여긴 생각을 가졌다 하여도 다수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린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다는 표현을 쓴다. 마음을 얻으면 어렵고 힘들고 귀찮아도 함께 책임지며 간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당위와 명분과 정의는 힘을 얻기 어렵다. 우리가 옳고 우리는 이런 학교 모습을 보여 줄 거야가 아니라 더 큰 우리가 어떻게 하면 미래의 학교 모습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똑똑하다 여긴 소수가 다수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얼마전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한 교사가 사람의 성장을 돕는 언어로 공감의 언어, 칭찬의 언어와 더불어 격려의 언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공감과 칭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아이들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함께 표현해보기도 하는 만큼 격려의 언어도 중요한 것 같은데 이런 표현은 잘 배우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크게 공감이 되었다. 동시에 나의 수업에서 격려의 언어는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학교 민주주의가 잘 이루어지도록 격려의 언어를 먼저 고민해보는 것이 그 학교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잃은 길은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잊은 길은 앞에 두고도 찾아가지 못한다. 더디가도 사람 생각하며 가야 한다.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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