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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밥통' 호봉제 깨지나···정부, 임금개편 본격 돌입

입력 2020.01.13. 14:32 댓글 2개
고용부,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발간
정부 "호봉제 폐해...직무중심 시대적 흐름"
호봉제 비율 감소 추세지만…여전히 '견고'
정규직·비정규직, 대·중소기업간 격차 심해
다만 노사·민간 자율성 강조...효과는 의문
[세종=뉴시스]강종민 기자 =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임금체계 개편 관련 매뉴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0.01.13. ppkjm@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정부가 호봉제를 폐지하기 위한 수순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를 위해 고용부는 13일 민간에 제공하기 위한 직무 중심 임금 체계 개편 메뉴얼을 발표했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산업현장의 어려움을 고려해 기업의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을 돕기 위해 그간 임금·평가체계 컨설팅 사업을 지원해오고 있다"며 "메뉴얼은 그 노력의 일환으로 직무급 중심의 임금체계 변화 필요성과 절차, 방식 등에 대해 참고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고용부가 발표한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메뉴얼은 직무급 중심 임금체계의 필요성 및 절차·방식 등 참고 사항을 담고 있다. 직무급제란 업무 성격,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달리하는 것이다.

메뉴얼은 당초 지난해 9월 제작돼 공공기관의 임금체계를 직무급제로 바꾸는 지침으로 쓰일 예정이었으나, 노동계의 강력 반발로 일정이 미뤄졌다. 특히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이 미진한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임금개편이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 "연공제 폐해...임금의 체계 개편은 시대 흐름"

고용부는 우리 경제가 정체기에 접어든 만큼 호봉제에 기반한 임금 체계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고용부는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호봉제가 노동자들의 소속감과 장기근속을 통한 숙련형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며 "기업 역시 규모면에서 성장을 거듭했기 때문에 호봉과 비례한 임금인상을 감당할 여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는 3% 미만의 경제성장률에 직면해 있다. 2025년에는 고령인구가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임금의 과도한 연공성에 따른 부담을 기업이 감당할 여력이 적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이로 인한 파장은 청년의 채용이 줄고, 고령자 조기퇴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용부는 또 임금의 연공성이 정규·비정규직 간 격차,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표하고 있다.

직무 또는 능력이 아닌, 입직형태와 근속기간 등이 중시될 경우 비정규직에 불리한 근무환경이 조성될 수 있고, 대기업이 영세기업보다 호봉제가 더 견고하고, 격차 역시 크다는 점에서 임금격차를 확대하는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호봉급 임금체계를 운영하는 100인 이상 사업체는 2016년부터 매년 63.7%, 60.3%, 59.5%, 58.7%로 줄어들고 있다.

대기업(300인)을 기준으로 보면, 호봉급을 운영하는 기업의 비율은 60.9%(지난해 6월 기준)로 여전히 높다.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호봉제를 운영하는 사업장은 16.1% 수준이다.

규모와 고용형태에 기반해 '사업체 규모별 임금수준'을 보면, 300인 이상·정규직 사업장은 100%다. 이를 기준으로 300인 이상 비정규직 사업장은 63.2% 수준의 임금을, 300인 미만 정규직 사업장은 56.8%, 300인 미만 비정규직 사업장은 41.8% 수준이다.

공고한 호봉제는 국제 비교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임금 연공성 국제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년 미만 대비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이 약 3.3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유럽연합(EU) 15개국 평균의 약 2배다.
[서울=뉴시스]

임 차관은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호봉 때문에 임금격차가 크거나, 서로 다른 일을 하는데 호봉이 같다는 이유로 비슷한 임금을 받는 등 ‘동일노동 동일임금’ 취지에 반하거나 임금의 공정성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직무 중심 임금체계 확산...정책 강화

정부는 이번 메뉴얼을 통해 민간 기업의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자료에는 임금구성 단순화를 시작으로 ▲다양한 유형의 임금체계 개편 방법·사례 ▲직무가치에 기반한 인사관리체계(직무관리체계) 도입을 위한 직무분석·평가 방법 ▲새로 개발한 제조업 범용 직무평가도구 활용방법 등이 포함됐다. 자료는 실무자용 상세본과 관리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요약본으로 나뉘어 제공된다.

정부는 메뉴얼 배포와 함께 노·사 자율적인 임금의 연공성 완화, 직무·능력에 기반한 공정한 임금체계 확산을 위한 정책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먼저 업종별 직무평가도구 등 관련 인프라를 지속 확충하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과의 연계를 통해 직무 관련 정보를 촘촘하게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기존에 진행하던 임금·평가체계 개선 분야 컨설팅도 지속적으로 늘리는 한편 올해는 '직무중심 인사관리체계 도입 지원사업'을 신설해 시범 운영한다. 이에 따라 보건의료·호텔·철강·금융·공공·사회복지서비스·IT·제약 등 직무평가도구가 개발된 8개 중 업종별 2~3개사를 선정해 전문 컨설팅을 지원할 계획이다. 올해 확보된 예산은 4억원 규모다.

아울러 시장임금정보의 확충을 위해 임금직무정보시스템을 개선하고, 노·사가 참고할 수 있는 기업규모·산업 및 직종·경력 등에 따른 시장임금 정보를 분석·제공할 예정이다. 임금 문제를 강제할 수 없는 만큼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 의제·업종별위원회 등을 통해 노사정 간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도 노력할 계획이다.

다만 이 같은 정부의 정책 강화에도 불구하고 민간 차원의 직무급 임금체계 도입이 활성화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정부는 공공부문의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그 과정에서 공직사회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시장 논리가 절대적인 민간 부문에서 권고 수준의 메뉴얼이 기업의 동참을 이끌어내기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해석이 나오는 부분이다.

또 직무급 도입에 앞서 이뤄져야 할 직무별 분석도 어려운 과제다. 정부 역시 행정체계가 유사한 공공부문과 달리 자율성을 가진 민간 부문의 직무 분석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다.

임 차관은 "사실 민간부문은 온전하게 당사자들이 결정하기 때문에 쉬운 과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호봉제에 익숙해 유지하겠다는 기업도 많을 것"이라며 "다만 최근 들어 호봉제의 문제를 느끼는 기업들이 스스로 직무·역할급 등의 형태롤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기에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이어 "기업의 임금체계는 정부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당사자 간 협의와 소통을 통해 노동자들이 수용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바람직한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노·사 모두가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사례를 확산시켜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임금의 지나친 연공성을 줄여 격차를 완화하고 일의 가치와 능력에 기반한 임금체계가 확산되도록 노·사 모두가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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