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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쏴' 전두환에게 책임 묻지 못한 배경은

입력 2020.01.09. 07:00 댓글 0개
신군부 발포 관련 자료 폐기·왜곡해 정부 차원 조사 한계 초래
검찰 수사도 책임자 혐의 입증에만 집중, 발포 관련자 기소 無
"발포는 자위권과 무관한 학살 행위, 지휘체계 이원화 규명을"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자 색출은 진상규명의 첫 단추이자 본질로 꼽히지만, 40년이 다 되도록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발포 관련 증거를 없애거나 왜곡해 그동안 정부 차원 조사에 한계를 초래했고, 과거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도 진압작전 책임자들의 혐의 입증에만 집중됐기 때문이다.

9일 5·18기념재단과 5·18 연구진에 따르면 5·18 발포 명령자는 40년간 '자위권 발동'이라는 허구 논리 속에 감춰져 왔다.

신군부 세력은 1985~1998년 80위원회, 511연구위원회, 80육군대책위원회, 511분석반 등 각종 군·정보기관 비밀조직을 꾸려 증거 인멸과 역사 왜곡을 치밀하게 주도했다.

'발포 명령은 없고, 자위권 발동만 있었다' '과격 시위에 따른 합법적 조치였다'는 허위 주장들이 대표적이다. 군에 불리한 내용을 문건에서 삭제하거나 날조해 신군부의 내란 목적 살인행위를 '정상적인 군 작전'인 양 180도 호도했다.

사격·발포 지시와 관련된 군 관계자들의 증언을 삭제시키거나 전투 상보·상황일지를 비롯한 5·18 관련 군 자료도 위·변조한 게 수두룩하다. 민간인 사살 기록이나 사망자수를 수정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다.

실제 1988년 11월부터 1989년 2월24일까지 진행된 5·18광주청문회도 증언자들을 상대로 답변 내용·표정·태도까지 연습시킨 511위원회의 각본대로 이뤄졌다. 신군부 세력은 보안사 차원에서 1993년과 1996년 5·18의 진상을 감추기 위해 핵심 자료를 일괄 폐기하기도 했다.

【광주=뉴시스】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곤봉과 최루탄을 동원해 시민군을 진압하는 계엄군의 모습. **저작권자 요청으로 회원사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20.01.09 (제공=정태원씨)

5·18 핵심 자료 폐기·조작은 고스란히 실체 규명의 한계로 이어졌다. 1995년 검찰은 청문회에서 불거진 쟁점과 조작된 자료·증언을 바탕으로 5·18 무력진압 가해자들의 혐의 입증에만 주력했다.

전두환 중심의 비공식 지휘체계에서 발포 명령이 내려졌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기소도 없었다. 구체적인 피해 내용(조준 사격 증언 등)과 증거에 대한 수사 역시 미흡하기 짝이 없다.

재판 또한 공소장에 나온 범죄사실을 바탕으로 이뤄졌고, 최초 발포명령자는 '자위권 발동'의 그늘 속에 꼭꼭 감춰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면죄부만 주어졌다. 전두환·노태우·정호용 등에게 적용된 내란 목적 살인 행위는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 진압 작전 과정에 숨진 17명 뿐이었다. 1980년 5월 20~21일 광주역·전남도청에서 자행된 집단발포와 수 차례의 양민 학살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지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원회가 발굴한 보안사의 군 작전 문서 대부분도 조작돼 있었다. 발포 등 핵심 쟁점과 관련한 자료들은 폐기되거나 통째로 누락된 상태였다.

아울러 계엄사와 보안사는 5·18 직후 발표문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책임을 덧씌우며 발포 자체를 부정했다. 군 기록에 자위권 발동시각을 기재하지 않거나 전두환이 자위권 결정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것처럼 꾸며왔고 작전에 대한 모든 책임을 현지 사령관에게 위임했다며 책임을 회피해왔다.

반면 5·18연구진은 "신군부 세력이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별도의 지휘 체계로 광주를 '조기 강경 진압'하면서 폭력을 수반했고, 발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2017년 국방부 헬기사격 특별조사 결과도 자위권 발동론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1980년 5월21일·27일 헬기 사격이 실재한 점으로 미뤄 계엄군의 자위권은 허구고 발포명령이 명시적으로 있었다"는 게 특조위가 내린 결론이다.

▲자위권 발동 이전 실탄 지급과 수차례 발포 ▲자위권 발동수칙인 하복부 사격 미준수(5·18 총상환자 53% 이상이 머리·목·가슴 등 파편, 21일 이전 부상) ▲저격수 배치, 가정집과 비무장·구호 조치 시민에게 사격, 기관총 사격 등이 대표적인 근거다.

또 공수부대원들이 검찰에 '실탄 분배, 자위권, 봉쇄 작전을 사살 명령으로 받아들였다'고 진술한 점, 광주의 평화로운 시위 상황이 자위권 발동 요건과 어긋나는 점 등도 군의 발포가 자위권과 무관한 무차별적 민간인 학살이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최근 출범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발포 전문을 찾는 데 주력하고, 계엄군 전수 조사를 통해 실탄 분배 과정과 발포 명령 경위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발포 명령자 규명이 쉽지 않은 이유는 전두환이 권좌에 있는 동안 불리한 증거들을 없앴기 때문"이라며 "검찰이 정호용의 유죄 입증에만 주력해 자위권 발동을 사실상 합리화시켜줬고, 신군부 실세 또한 합법을 가장한 지휘체계 이원화로 책임을 피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권찬탈을 위해 별도 지휘체계로부터 발포 명령이 이뤄졌다는 것을 세밀하게 규명해야 하고, 지휘체계 이원화를 밝혀야 정확한 발포 계통과 책임자를 찾을 수 있다"며 "더 늦기 전에 기소할 수 있을 정도의 전면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광주항쟁 피해 당사자인 김대중 정부가 5·18 관련 범죄자들을 사면하면서 사실 부정과 역사 왜곡의 빌미를 준 점, 그동안 정부 차원 조사가 정치적 고려에 따라 이뤄진 점도 현대사의 비극으로 꼽힌다.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1980년 5월 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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