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2020무등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조순아-초록의 시간

입력 2020.01.01. 15:50 수정 2020.01.01. 15:50 댓글 0개
삽화-전현숙

5월, 바위산은 온통 초록이다. 겨우내 바다를 베고 곤한 잠을 자던 섬도 초록을 이불호청처럼 덮고 있다. 오후로 들면서 바빠진 바람은 소나무를 흔들고 밤나무를 흔들더니, 풀꽃사이를 비비고 지나간다. 그의 눈에 비치는 섬은 금방이라도 바다를 향해 뛰어들 듯이 꿈틀댔다. 좁고 깊은 협곡을 부드럽게 만들어놓은 초록은 발을 헛디디는 순간, 이승에서 사라지게 할 깊은 늪처럼 보였다. 몇 해 전, 아내를 질컥한 땅에 묻고 나선 더더욱 그랬다.

"흠 흠, 어디 나갔나?"

그는 헛기침을 줄기차게 해대며 가슴을 탁탁 두들겼다. 오른손에 단장을 꼭 움켜쥐고 뒤꿈치는 한껏 세웠다. 흐릿한 눈으로 이층과 마당, 둑을 촘촘히 훑었다. 둑 위에 뭔가 움직였다. 그의 눈이 망원경렌즈를 맞추듯 가늘어졌다가 커졌다.

둑 위를 뛰어다니는 것은 개들이었다. 한 마리는 갈색 털의 똥개고, 다른 한 마리는 우리 도베르만이었다. 도망치듯 똥개가 잰걸음으로 달아나자, 도베르만이 따라가며 개의 엉덩이를 핥았다. 개가 고개 돌려 으르렁거리면 도베르만은 도망치듯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금 쫓아갔다. 동네 건달처럼 아무 잡종이나 건 드는 녀석을 보니, 그는 숨겨놓았던 분노가 일어났다.

그가 녀석을 만난 건 일 년 전이었다. 아들이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서 집을 떠나고 난 뒤였다.

"도베르만이래요. 경비견으로 훈련받아서 적대감이 많고 사납긴 한데, 주인은 잘 따라서 집 지키는 개로선 최고이래요."

육감까지 느껴지는 커다란 개였다. 몸 대부분은 윤기 나는 검은 털로 덮여있었고, 눈 위, 주둥이, 앞가슴과 네 다리는 갈색 털이었다. 균형 있게 섞인 털은 도베르만의 육중함에 우아함을 더해주었다. 그를 보자마자 도베르만은 꼬리를 빳빳하게 치켜세웠다. 코언저리에 주름을 잔뜩 잡았다. 이를 하얗게 드러내고는 그에게서 며느리를 지켜내려는 듯 으르렁거렸다. 그는 단장에 기댄 몸을 어정쩡하게 빼면서 뒷걸음쳤다. 뒤로 물러난 거리만큼 도베르만이 다가섰다. 곧바로 달려들어 그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만 앉아."

며느리는 자신만이 녀석의 주인인 것처럼 도베르만의 목줄을 잡아당겼다.

"아니 뭔 놈의 개가 그리 크다니?"

그가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힐끗 쳐다보다가 도베르만의 몸을 훑어보았다. 뒷발근육이 유난히 발달했고, 종아리는 다부진 게 힘이 있어보였다. 뒷다리 사이의 성기만 보아서도 건장하고 근사하기까지 한 숫놈이었다.

그는 왠지 도베르만에게 며느리를 뺏길 것 같아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멋진 몸을 가진 젊은 남자를 보았을 때처럼 부러움과 질투도 느꼈다.

"군살도 없고 다부진 게 혈기왕성한 사내놈 같구나."

그는 며느리를 향해 웃으면서 쭈글쭈글한 손으로 도베르만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순간 도베르만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뒤로 물러나며 중심을 잡기위해 뒤뚱거렸다. 도베르만을 말려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며느리를 쳐다보았다.

"도베르만, 안 돼."

며느리가 황급히 목줄을 잡아당겼다.

"착하지. 그만 앉아."

며느리가 녀석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간지럼을 태웠다.

"그이도 없는데 집에 도둑이 들까 봐서요. 도베르만은 삶은 달걀을 무척 좋아한대요."

며느리가 도베르만에게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도베르만이 며느리의 옆구리와 팔 사이에 머리를 끼워 넣고는, 기다란 혓바닥으로 며느리의 팔과 다리를 핥았다. 사랑하는 남자의 손장난에 간지럼을 타는 듯, 며느리가 간드러지게 깔깔댔다. 그는 짚고 있는 단장을 들어 녀석의 목덜미와 몸뚱이를 후려치고 싶었다.

그녀의 쇄골에 메마른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것만으로도 뜨거운 기운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감각 없는 다리까지 퍼져 나갔다. 문득 그녀의 눈동자에 무엇이 깃들어 있는지 읽고 싶어졌다. 목에서 입술을 떼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기 싫은 듯 턱을 들어 올리더니, 두 눈을 질근 감아버렸다. 눈을 감은 채 그의 어깨를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가 자신을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녀의 몸 안으로 곧바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래간만에 찾아온 희열을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타깝기 까지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었다.

그는 갑자기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몸이 보고 싶어졌다. 방 한구석에서 시침을 뚝 떼고 바라보고 있는 거울을 쳐다보았다. 그는 우뚝 멈췄다. 그녀의 몸 위로 겹쳐져 비춘 모습은 자신이 아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체가 그녀의 쇄골과 얼굴에 침을 내뱉으며 마음껏 핥고 있었다. 누구일까. 그에게 공포감이 엄습했다.

'아 악, 꿈이야 이건 꿈이야'

그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자신이 내지른 안타까운 소리를 들었다. 긴 탄식과 함께 메마른 입술이 들썩였다. 그는 고개를 강하게 도리질 했다. 그녀에게서 분리되어진 채, 그의 손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눈을 부릅뜨고 거울 속을 다시 바라보았다. 오싹했다. 그녀의 몸을 치받으며 고꾸라지는 검은 물체는 다름 아닌 그 녀석이었다.

잠들어있는 그의 얼굴을 햇빛이 진득하게 핥았다. 헛꿈을 꾼 탓인지, 땀으로 질척해진 이마가 일그러졌다. 힘겹게 눈을 떠 사방을 한참 둘러보았다. 창문에 반쯤 걸쳐있는 햇빛이 보였다. 아침인지 오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는 가끔 때를 분간하지 못했다. 아니 요즘 들어 부쩍 시간을 자주 잊어버렸다. 약에 취해 송장처럼 자고 일어나면 특히 그랬다. 어디론가 떠돌고 있는 듯 어지러웠다. 몽롱함에 몸이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좀 더 참아볼걸 진통제를 너무 과하게 먹었나보네' 진통이 사그라지면 아팠던 걸 금세 잊어버리고 늘 이렇게 중얼거렸다.

유난히 각진 그의 턱에는 삼차신경통이 자리하고 있다.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그 역시 확실히 모른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 말도 신빙성이 없게 생각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CT와 MRI를 한답시고 늙은 그를 하루 반나절을 굶겨 검사를 해놓고는, 삼차신경통이라는 시답지 않은 병명을 내 놓았기 때문이었다.

"삼차신경은 얼굴 감각을 뇌로 전하고, 씹는데 사용하는 근육을 지배하는 신경입니다. 이 신경이 손상되면 삼차신경통이 생기는데요. 대부분 얼굴 한쪽의 입술과···."

그러나 삼차신경통은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엑스레이사진과 피검사에서도 아무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기대했다. 형태를 갖춘 시커먼 암 덩어리기가 있기를, 아니면 몇 달밖에 못 살 거라는 선고와도 같은 오염된 피가 자신의 몸 여러 곳에 돌고 있기를 말이다. 몸 어딘가에서 형태를 알아 볼 수 있는 그런 암 덩어리가 떡하니 나와 주었다면 그는 정말 기뻤을 것이다. 그랬다면 살아있는 동안 만에라도 사람들에게, 특히 며느리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놈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통증만 주었을 뿐이었다. 고약하게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늙은이의 욕망 같은 고통이었다.

의사는 통증을 잡는 치료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통증이 있을 때마다 진통제를 드시면서 통증을 달래는 방법하고, 턱으로 가는 신경을 수술로 차단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연세가 많으시니까 수술보다는 약으로 통증을 진정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뭐요? 그러면 명줄이 끊어질 때까지 치료도 안 되는데, 독하디 독한 진통제를 무조건 배 창시에다 집어넣어야 한단 말이요? 의사양반, 수술을 해 주시요."

"어르신, 수술하신다고 해서 삼차신경통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합니다. 어쩌면 수술 후유증으로 안면 감각이 마비되어 흉측해 질 수 있고, 수술 중에 마취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해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그는 팔십이 된 늙은이였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단 말인가. 안면이 마비되어 음식물을 질질 흘리는 것이 두렵겠는가, 수술 중에 그대로 이승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말이 무섭겠는가, 아니었다. 그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면 단 한가지였다. 그건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살점을 떼어내든 뼈를 잘라내든 어떻게든지 수술해 주시요. 죽는 것도, 병신 되는 것도, 지금 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제발 통증만 떼어 주시요."

두개골을 가르고 턱으로 가는 신경을 차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체했을 때 손끝을 따고나면 명치끝이 시원해지는 것처럼 수술 할 때 피를 흘린다면 통증이 말끔하게 떨어질 것 같았다. 머리를 가르게 되면 적어도 의사가 어딘가에 숨어있는 통증을 쉽게 찾아내서 톡 떼어내 줄줄 알았다. 그의 명줄은 통증만큼이나 질겼다. 통증이 명줄만큼 긴 것인지도 몰랐다. 통증과 명줄이 도베르만과 그처럼 팽팽히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의사가 말한 죽을지 모른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몇 달에 한 번씩 찾아왔던 통증이 수술을 한 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왔다. 급기야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와 그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어쩌면 의사는 턱으로 가는 삼차신경통 줄을 끊어 놓은 게 아니라, 멀쩡한 신경 줄을 끌어다가 삼차신경통 줄에 연결 해 놓은 것 같았다. 수술한 후 오른쪽 다리에 마비까지 와, 그는 다리를 의족처럼 끌고 다녀야했다.

그는 며느리를 더 귀찮게 하는 지겨운 노인네가 되어 있었다. 누구에게도 동정 받지 못했다. 어쩌다 안부를 묻는 친척과 이웃이 찾아와도 도통 반갑지 않았다. 죽어야 당연한데 멀쩡하게 살아 있어 사람 귀찮게 한다는 듯한, 그런 눈빛을 서로 교환하는 것 같아 간밤에 통증에 쩔쩔맸던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없었다. 면도칼이 턱을 도려내는 것처럼 너무 아파서 일부러 송곳을 꺼내 턱을 콕콕 찔렀다는 하소연도, 바늘로 어금니 사이사이를 피가 나도록 후벼 팠다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입에서 비명처럼 한숨이 새어 나왔다. 통증에 진저리칠 때마다 턱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으면 했다. 누런 고름덩어리가 주렁주렁 매달렸으면, 삐걱대는 끔찍한 소리라도 났으면 하고 매번 소망했다.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조금만이라도 알아봐준다면 지금보다 더 심한 통증에 치를 떤다 해도 기쁘기까지 할 것 같았다. 며느리 뿐 아니라, 모두가 엄살 심한 노인네라고 치부하는 것 같았다. 지금 죽어 산에 갖다 묻어도 아까울 것 하나 없다는 심드렁한 눈빛이 견디기 어려웠다.

며칠 전 의사는 그에게 선심 쓰듯 처방전을 써주며 말했다.

"지금 처방전에 써드린 진통제는 모르핀이라는 마약이에요. 통증이 심할 때만 한 알씩 더 섞어 드세요. 조금 아프다고 매번 약을 섞어 드셔서 용량을 늘리면 나중에는 정말 통증을 잡을 수 있는 약이 없어요. 심장에 무리가 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약을 많이 먹을 것 같이 보였는지 의사는 한마디 더 보탰다.

"진짜 아플 때만 드셔야 합니다."

그도 위를 깎아내리고 맛도 없는 쓰디쓴 약을 많이 먹고 싶지 않았다. 사실 약효가 없을까봐 겁이 나는 것은 의사보다 그가 더 했다. 말은 안했지만, 의사가 따로 지어준 진통제를 한 알 더 먹어도 이미 통증에 듣지 않았다. 간밤에도 두 알을 먹었는데 간질 하듯 뒤 트는 통증 때문에 새벽에 세알을 더 먹어야 했다. 그러자 통증이 잦아들었다. 통증은 점점 모르핀의 몽롱함에 무뎌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그도 몽롱함을 쾌락처럼 즐기고 있는지 몰랐다.

그의 아랫배가 팽팽히 부풀어 올랐다. 급하게 쏟아내야 할 요의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오줌을 누고 싶지가 않았다. 정확이 말하면 몽롱함에서 깨어나기 싫었다. 왠지 오줌을 배설하고 나면 약기운이 다 빠져나가 통증이 앙칼지게 달려들 것만 같아 무서웠다. 그는 발가락 끝에 힘을 바짝 주어 항문의 괄약근을 꽉 조였다. 봇물 터지듯 밀려 나오려는 요의가 잠시 주춤했다. 쾌감이 스멀스멀 방광을 지나 마비된 다리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이승의 문턱을 넘는 순간이 이런 쾌감이라면 지금 명줄을 놓는다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죽음을 생각할 때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아내가 떠올랐다. 고통에서 빨리 해방되기를 바랐던 아내의 왼손에는 염주가, 늘어 처진 목에는 십자가가 부적처럼 걸려있었다. 그 후에도 아내는 많은 신들을 찾아 매일 울부짖었다. 하지만 숨 끝을 놓던 순간 애타게 찾은 것은 그의 손이었다. 한 올의 거웃도 남아 있지 않은 아랫도리에 그의 손을 잡아 끌면서 부드럽게 쓰다듬어달라고 했다.

"아."

아내가 몽롱한 눈으로 거친 신음을 내질렀다. 그는 너무 놀라 아내를 밀쳐낼 뻔했다. 돈만 있으면 육지에 나가 안을 수 있었던 여자들에게 들을 수 있었던 교성소리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한집에 살고도 아내는 거실 자신은 안방에 기거했다. 가끔 거실로 나가 곁에 자려고하면, 아내는 동네 건달 보듯이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거칠게 밀쳐냈다. 거의 남이나 다름없이 살아온 세월 앞에 늙은 아내가 잡아끄는 손길이, 죽음 앞에서의 무서움이었는지, 살아온 세월에 대한 외로움이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얇은 피부만 겨우 덮고 있는 아내의 아랫도리를 그는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아···."

아내의 입에서 다시 신음이 새나왔다. 서로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 앞에서나 부끄러움 없이 낼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이고 높은 신음소리였다. 아내의 숨소리가 이내 잦아들더니 서서히 멈췄다. 그가 자신만의 남자였음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평생을 다른 여자들에게 정신이 팔렸던 그에게 마지막 경고를 했던 것인가.

"컹컹, 컹컹~."

낯익은 소리였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가까스로 며느리를 기다리다 잠 들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단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섰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나갔는지 녀석의 집은 비어있었다.

"꺼억, 꺼억."

그는 억지로 신트림을 게워냈다. 속이 답답하고 울렁거렸다. 오전 내내, 손끝을 따달라고 헛기침으로 며느리를 불렀지만 아무 기척이 없었다. 가슴을 탁탁 두들겼다. 오목가슴 밑이 쓰라렸다. 아랫배에 옅은 통증까지 느껴졌다. 이런 통증쯤이야 턱의 통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울컥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는 힘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언제 다녀갔는지 화장대 위에 삶은 계란이 보였다.

어젯밤, 바삐 나가려는 며느리를 향해 그는 외쳤다.

"아가, 찐 달걀이 먹고 싶구나."

정말 달걀이 먹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소화도 잘 안 되신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따 달라 그러시면서, 무슨 찐 달걀이 드시고 싶다 그러세요? 아이 혼자 놔두고 일이층을 오르내리는 일이 얼마나 불안한지 아세요?"

그의 눈이 기대감에 빛났다.

"아가, 공단에 일하러 온 객지사람들이 방을 구한다더라. 많은 방을 놀리면 뭐하겠냐. 이층은 세 내놓고, 일층으로 내려와 나랑 같이 지내자구나. 내가 맘대로 이층으로 올라 다니면 좋겠다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서 말이다."

그가 오른쪽다리를 툭툭 치며 며느리를 향해 웃었다. 며느리가 눈을 내리깔았다. 일층으로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처음 손을 따 달라고 한 것은, 며느리를 자주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턱의 통증으로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고 삼키다 보니 정말로 체하는 일이 허다했다. 신트림에 가슴이 묵직해서 견딜 수 없는 날이 많아졌다. 며느리를 볼 수 없으면 더 심해졌다.

"식사하고 곧 바로 누워계시니까 소화가 안 되는 거잖아요. 누워만 계시지 말고 운동도 하고 그러세요."

그가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해 운동은커녕, 도베르만 때문에 마당으로 내려서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며느리는 모르는 것 같았다.

"개라도 팔아버리자꾸나."

삽화-전현숙

며느리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마당은 온통 녀석의 공간이었다. 녀석은 한 곳에 쳐 박혀 있지도 않았다. 난봉꾼처럼 어슬렁어슬렁 온 마당을 싸돌아다녔다. 어떤 날은 며느리가 있는 이층에까지 올라가서는, 뒤뚱거리며 마당으로 내려서려는 그를 비웃듯이 내려다보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개새끼 주제에 눈을 내리깔고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 그의 비위를 여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제는 유리창에 기대어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그가 있는 쪽으로 건들건들 다가왔다. 이곳으로 절대 내려오지 말라고 영역을 표시하듯이 다리를 쩍 들어, 빳빳하게 선 물건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놓고 오줌을 시원스럽게 쏴 갈겼다.

"요즘 도둑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꾸 도베르만을 팔자고 그러세요?"

며느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나는 녀석이 내게 달려 들 것 같아 어찌 무섭기만 하다."

"도베르만이 얼마나 순한데 그러세요. 괜히 겁먹는 거예요."

"줄이라도 걸어 기둥에 묶어 놓으면 어떻겠냐. 그러면 내가 수월하게 이층으로 올라 갈 수 있으니, 네가 번거롭게 일이층으로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묶어놓다 도둑이라도 들면 어떻게 해요. 며칠 전 뒷집에 도둑이 들었다는데."

며느리가 서둘러 방을 나가려고 했다.

"아가, 속이 답답해 죽겠구나. 손 좀 따주렴."

"아버님, 앞으로 속이 불편하실 때는 손가락 따지 마시고 소화제를 드세요."

"벌써 세 병이나 먹었는데 내려갈 기미가 없다. 바늘로 손가락을 깊숙이 쑤셔봐라. 그래야 속이 시원해지고 언친 것이 한꺼번에 쑤욱 내려 갈 것 같다."

"지금도 뼈에 닿을 것 같은데 어떻게 더 깊게 찔러요."

생각만으로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이마를 찡그렸다. 며느리는 이내 체념한 듯, 경대서랍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놓고 그의 등 뒤로 앉았다.

며느리의 손이 그의 등뼈를 하나씩 누르면서 천천히 허리께로 내려왔다. 다시금 등위로 올라간 며느리의 손이 그의 양쪽 어깨를 툭툭 치고 팔을 쓸어내렸다. 그는 눈을 감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며느리의 손놀림을 느꼈다. 달큼한 꿈속에 있는 듯, 한참동안 기분이 멍해졌다. 옆구리가 짜릿해 움찔거렸다.

"커~억."

참아 볼 할 겨를도 없이 신트림이 올라왔다. 좀 더 오랫동안 며느리의 손길을 느껴보고 싶은 그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쳤다. 며느리가 앞으로 다가와 앉아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훑었다. 며느리의 손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땀이 배여 있어 미끌미끌하기까지 했다.

"뼈에 구멍이 나도 괜찮으니까 깊이 쑤셔봐라."

이깟 통증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며느리는 별 망설임도 없이 바늘로 그의 손가락을 푹 찔렀다.

"아."

그가 탄식처럼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손끝이 따끔거리고 아팠지만, 묘한 기운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며느리가 또 다른 손가락을 바늘로 깊게 쑤셨을 때, 마비된 다리까지 간질거리는 거 같았다. 쾌감으로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는 간만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애야, 내 턱이 많이 붓지 않았냐? 어젯밤에 너무 아파서 한숨도 못 잤단다."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벌겋게 부은 턱을 며느리 앞으로 쭉 내밀었다. 도베르만의 목덜미를 쓰다듬듯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으면 했다. 따듯하고 근심어린 눈빛을 보내준다면 어린아이처럼 더해가는 칭얼대는 조바심도, 통증 앞에 부끄러움 없이 타협하고 마는 추한 집착들도 다 내려놓을 것 같았다.

"어제 저도 아이가 밤새 칭얼거리는 통에 한 숨도 못 잤어요."

그러고 보니 뽀송뽀송한 며느리의 얼굴이 누렇게 들떠 있었다.

"정말 매번 바늘로 손가락 찌르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에요. 앞으로는 아버님 혼자 따시면 안 돼요? 어머님은 혼자서도 잘 따셨잖아요."

언제부턴가 아내는 밥 먹고 나서 곧바로, 또는 잠자리 들기 전에 혼자서 손가락을 따곤 했다. 손가락 끝에서 검을 피를 꼭꼭 짜 내면서 평상시 부끄럼 많은 아내답지 않게 그의 앞에서 끄윽끄윽 신트림을 내리 해댔다.

"아이구, 이제 사 속이 좀 시원하게 내려가는 것 같네."

"약국에 가면 좋은 약이 많은데, 사람이 미련하게 왜 생살을 찌르고 있어. 그런다고 체한 것이 내려가?"

아내는 바늘로 깊게 찔러 따도 쑤욱 내려가지 않는 병이었다. 젊어서 그는 갯바닥에서 번 돈을 정신없이 육지 여자들에게 가져다주었다. 돈이 바닥을 드러내기 전까진 서너 달씩 섬에 들어가지 않았다. 돈 떨어져 밀물처럼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면 아내는 오랜만에 들어온 서방보다 바다가 좋은지, 갯것 한다고 바다로 나가 해가 떨어진 다음에야 들어오곤 했다. 외롭게 안으로 삭이기만 해서 아내는 그런 병이 들었을 지도 몰랐다.

그가 천장으로 귀를 기울였다. 외출에서 돌아왔다면 낮잠에서 깬 손자의 칭얼거림을 듣거나, 징검징검 걷다가 다다닥 뛰는 손자를 제지하는 며느리의 발놀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집은 적막했고 속은 여전히 답답했다. 그는 손끝으로 배 여기저기를 꼭꼭 눌렀다. 배에 있던 통증이 오목가슴아래와 옆구리에서까지 느껴졌다. 배를 쓱쓱 문질렀다. 그는 머리맡에 놓아둔 단장을 집어 들어 거추장스러운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거실 창에 서있으면 며느리와 손자를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며느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진 그에게 무척 상냥했다. 도베르만이 들어오기 전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며칠 전 자신을 보고 경기하듯 놀라던 손자 녀석이 떠올랐다. 어린애들이 다하는 낯가림일 테지만, 한 공간에서 부대끼고 살았다면 할아버지를 보고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나 서운했던지, 녀석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발을 양껏 세우고 두루미처럼 총총히 걸어 다니는 손자 모습을 그렸다. 까치발을 세우고 뛰는 것은 어디서 배웠을까. 할아버지는 시끄러운 걸 싫어하신단다, 그러니까 뛰어도 안 되고 떠들어도 안 돼. 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에게 며느리가 주의를 주면서 할아버지에 대해 두려움을 먼저 배우게 했을지 모른다고 지레짐작했다. 며느리는 일 층으로 아이를 데리고 내려오는 일이 좀체 없었다. 간혹 손자가 보고 싶다고 넌지시 말을 내비치면, 마당에 사냥개가 있어 걸음 배우는 아이가 다칠 수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이제 갓 뛰기 좋아하는 손자에게도, 건장함이 느껴지는 녀석에게도, 그의 시샘은 매번 독화살처럼 팽팽히 당겨졌다.

둑 위로 똥개들이 흘레하고 있는 게 보였다. 동네에 개가 많아서인지, 개들이 흘레하는 일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럴 때는 자신이 영락없이 개들보다 못한 쓸모없는 존재만 같았다. 그는 사실 홀래하는 개들이 부러웠다. 둑 위로 쫓고 쫓기는 개들이 보였다. 쾌락을 좇는 것에는 싱싱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마비된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언제 돌아왔는지 그의 모습이 창에 보이자 도베르만이 으르렁거렸다. 개에게까지 대접을 받지 못한 그는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녀석이 귀와 꼬리를 쫑긋 세우고 대문 주변을 바쁘게 서성거렸다. 코에 주름을 잔뜩 잡고 거세게 컹컹 짖었다.

도베르만의 짖는 소리 때문인지 잠잠했던 통증이 시작됐다. 그가 턱살을 한 움큼 잡아 꼬집어 비틀었다. 단장으로 턱뼈를 탁탁 올려쳤다. 통증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점점 더 사나워지는 것 같았다. 녀석이 턱을 물어뜯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진통제 몇 알을 입에 넣고 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도베르만이 더 거세게 짖었다. 녀석과 통증이 누가 더 사나운지 겨루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육실 할 놈."

턱과 입술을 움직일 수 없었다.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그가 이를 갈았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화장대에 있는 달걀을 집었다. 껍질을 까더니 달걀 속으로 진통제를 밀어 넣었다. 입가에 침이 질질 흐르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녀석에게 진통제를 몽땅 먹여 죽음 같은 잠에 빠지게 만들 셈이었다. 녀석이 잠들면 단장으로 머리통과 몸통을 후려쳐줄 테다. 으르렁대지 못하게 이빨을 다 뽑아 버려도 좋을 것이다. 라이터로 우아하고 윤기 나는 털도 몽땅 태워버릴 거야. 아니 그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위협하듯 솟아오른 꼬리와 성기를 잘라버려야지, 그러고 나서 통에 물을 받아 녀석의 머리통을 처박아놓으리라.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근사한 성기와 윤기 나는 털이 없다면 며느리는 더 이상 녀석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다정한 눈빛으로 자신만을 바라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벌써 가슴팍이 뻐근할 만큼 벅찼다.

녀석은 여전히 짖고 있었다. 그가 주머니에 달걀을 집어넣었다. 약을 먹었는데도 통증은 좀체 잦아들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밖으로 밀었다. 열린 문 사이로 끈적끈적한 더운 열기가 들어왔다. 그의 모습이 보이자,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이 녀석이 발광했다. 통증과 분노에 잠시 잊고 있었던 두려움이 되살아났다.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애써 다독이고. 주머니에서 달걀을 꺼내 도베르만에게 재빨리 던졌다.

"엣다 먹어라, 네 놈이 좋아하는 계란이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방으로 들어가, 화장대에 남겨 둔 달걀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는 창에 몸을 기대고 나서야 거친 숨을 골랐다. 이제부터 녀석이 잠들기 기다리면 되었다. 그가 웃었다. 도베르만이 귀를 쫑긋 세웠다. 불안한 듯 사위를 두리번댔다. 처음 그를 보고 경계했을 때처럼 하얀 이를 드러냈다. 도베르만이 두 발로 달걀을 움켜잡았다. 흠흠 냄새를 맡다가 혀로 핥았다. 이리저리 굴리며 장난을 쳤다. 좋은 시간을 아끼는 듯 했다. 마침내 도베르만이 달걀을 먹기 시작했다.

그가 큰소리로 웃었다. 괴상하게 킬킬거리기까지 했다. 달걀을 손에 쥐고 도베르만처럼 움켜쥐었다 폈다 장난을 쳤다. 그러다 달걀을 크게 베어 물었다.

"으∼∼으."

잠잠했던 통증이 되살아났다. 빡빡한 노른자가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숨이 막혔고, 가슴팍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가 방으로 들어가 허겁지겁 서랍을 열어 바늘을 꺼냈다. 억지로 신트림을 하며 손가락을 마구 찔러댔다. 피는 나오지 않고 아프기만 했다. 며느리가 찔러줬을 때 느꼈던 쾌감은 맛볼 수가 없었다. 턱의 통증이 더 심해졌다. 숨통이 끊어져도 통증은 계속될 것 같았다. 약 몇 알을 입안에 다시 집어넣었다. 혓바닥에 남은 달걀과 함께 꿀꺽 삼켰다. 쓰디쓴 약이 힘겹게 넘어갔다. 심장박동이 강하게 들썩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몽롱했다.

그가 힘겹게 기어 나와 창가에 앉았다. 녀석의 육중한 몸이 개집에 반쯤 걸쳐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흐흐흐."

그가 도베르만을 보며 괴상하게 웃었다. 그는 더 앉아있지 못했다. 자꾸만 어지러운 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누워 자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서 녀석을 처리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덜컹덜컹 대문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 같지 않은 것이 조급했다. 들뜬 다급함까지 느껴졌다. 그는 쓰러지려는 몸을 일으켰다. 낯선 남자가 담을 넘어 마당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도베르만은 짖지 않았다. 아니 짖지 못할 것이었다. 남자가 헐떡거리는 도베르만을 걷어찼다. 그러다 음흉하게 웃으며 이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가 소리쳤다.

"이봐 거기는 네놈이 올라갈 곳이 아니야. 나만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고."

그의 목소리는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 혓바닥이 똘똘 말려 목구멍을 꽉 틀어막고 있는 것 같았다. 손자가 잠에서 깨어났는지 자지러질 듯 울었다. 아무래도 무언가가 잘못됐다. 손자의 울음소리, 이 층을 배회하는 발소리, 들숨과 날숨을 쉬며 끙끙거리는 소리가 가물거리는 그의 의식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더 기대어 있지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자신의 생명이 질척한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버님, 아버님."

그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굳어지려는 몸을 애써 비틀었다. 다리에 힘을 주고 버둥거렸다. 허공으로 힘겹게 올라간 팔이 몇 번이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참만에야 단장을 움켜쥔 그가 의족 같은 다리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비된 다리가 채찍질을 당해 날뛰는 말처럼 유리창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유리파편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골목에서 개들이 짖었다. 또 다른 개들이 둑에서 캉캉거렸다. 문을 여닫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한데 엉켜 온 동네를 들썩였다.

그때였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검은 물체가 뛰어 들어왔다. 마취된 줄 만 알았던 도베르만이었다.

"아가, 아가."

그는 며느리를 절박하게 불렀다. 도베르만이 가까이 다가섰다. 주저앉은 채로 그가 뒤로 물러났다. 희고 날카로운 이빨사이로 찐득한 침이 흘러내렸다. 겁에 질린 그가 도베르만을 향해 단장을 휘둘렀다.

"이 개새끼, 저리 가지 못해!"

"크릉, 크르렁."

도베르만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그의 허벅지에 도베르만이빨이 박혔다. 바지와 함께 살점이 찢겨 나왔다. 정강이를 문 도베르만이 강하게 도리질했다. 하얀 핏줄이 뜯겨 나왔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의 몸이 바위산 초록처럼 흔들렸다.

"아~~아."

높은 교성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눈알이 희번덕였다. 며느리가 손끝을 따줄 때 맛보았던 짜릿함이 느껴졌다. 강한 쾌감이 다리를 지나 온몸으로 퍼졌다. 어찌할 수 없는 황홀경에 그가 턱을 높이 들어올렸다. 눈을 질끈 감고 사지를 부르르 떨었다.

"으으 음, 커~~억."

그가 신음처럼 신트림을 길게 내 뱉었다.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듯 그의 손이 움직이더니, 처진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종일 바빴던 바람이 잠잠해지고, 그의 숨소리도 이내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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